로또에 당첨돼 큰돈이 생기면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질까. 로또에 당첨되는 게 아니더라도 가까운 친인척으로부터 상속을 받는 등 큰돈이 생기면 인생이 더 행복해질까. 사람들은 큰돈이 생기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반박하는 의견도 많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다 보니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낭비한다거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이혼 등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돈도 다 날려서 오히려 불행해진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복권 당첨자 행복도 < 장애인 행복도
로또 당첨, 즉 큰돈이 갑자기 생겨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에 대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유명한 연구는 필립 브릭먼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연구팀이 1978년 발표한 내용이다. 이 연구팀은 복권 당첨자와 교통사고 등으로 반신마비 등을 겪는 장애인의 행복도를 비교 연구했다. 복권 당첨자들은 각각 5만~100만 달러를 받았는데, 당시 물가로는 거액이라고 할 수 있다. 복권에 당첨된 초기에는 당첨자들의 행복도가 굉장히 높았다. 5점 만점에 4점으로 조사됐을 만큼 큰 행복을 느꼈다. 문제는 시간이 몇 년 지난 후였다. 몇 년 후 복권 당첨자들의 행복도는 5점 만점에 3.33점이 됐다. 이에 반해 장애인들의 행복도는 처음 조사 때 5점 만점에 2.96점으로 매우 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행복도가 3.48점으로 올라갔다. 장애인의 행복도가 오히려 복권 당첨자의 행복도보다 높았다.
연구팀은 이렇게 행복도가 변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현 상황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때문이라고 봤다. 복권 당첨자는 굉장한 행운아인 것이 사실이고 처음에는 모두 행복해한다. 하지만 곧 그 상태에 적응되면서 점차 자신의 원래 행복도 수준으로 돌아간다. 교통사고 등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은 처음에는 불행해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그 상태에 적응해가면서 행복도 역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행복 수준이 있고 단기적 사건으로 행복도가 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유의 행복 수준을 느낄 뿐이다. 큰돈이 생기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연구는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점, 장애인이 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내 이후 행복론 관련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연구팀은 복권 당첨자들과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 연구했는데, 그 수가 각각 20여 명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과학적 검증 결과로 인정받으려면 연구 대상자가 최소 몇백 명은 돼야 한다. 20여 명만 조사한 결과로 복권 당첨자는 이렇다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을 직접 만나 조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런 한계에도 브릭먼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고전이 됐다.
이후 복권 당첨자들에 대한 연구는 계속됐다. 문제는 거액 당첨자를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대다수 연구는 거액이 아니라 몇백만 원 당첨도 포함시켜 복권 당첨자의 상황 및 행복도 등을 조사하곤 했다.
그런데 2018년 이런 한계를 극복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에리크 린드크비스트 스톡홀름대 교수 연구팀은 세후 10만 달러(1억3200만 원) 이상 복권 당첨금을 수령한 3362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실제 큰돈이 생겼을 때 사람들의 행복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일반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복권 당첨자 대부분 돈 관리 잘해
이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복권 고액 당첨자들은 첫째, 재정적 안정감이 증가됐다. 연구는 복권에 당첨된 지 최소 5년이 넘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5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의 재정적 안정감은 보통 사람보다 높았다. 당첨금을 바로 다 낭비하거나 써버리지도 않았다. 물론 당첨금을 다 써버리고 오히려 재정적 곤란에 빠진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돈을 잘 관리했고, 그 덕분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정적 안정감을 높게 유지했다. 최소한 복권 당첨자는 돈을 바로 낭비하면서 다 써버릴 것이라는 일반 상식은 맞지 않았다.
둘째, 현재 어느 정도 행복한가라는 점에서는 보통 사람과 유사했다. 즉 복권 당첨이 일상생활의 행복감을 증가시키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행복감이 컸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복권 당첨으로 증가한 행복감은 사라졌다. 돈이 많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명제는 진실이었다.
셋째,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보통 사람과 유사했다. 정신적인 면에서 더 안정화된 것도, 그렇다고 더 나빠진 것도 아니었다. 돈은 사람의 정신건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넷째, 삶의 만족감이 높아졌다. 복권 당첨자는 보통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지만 삶의 만족감이 높았다. 행복감과 삶의 만족감은 다르다. 예를 들어 아기를 낳아 어머니가 된 경우를 조사해보면 어머니들의 삶의 만족감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귀여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충분히 만족해한다. 그런데 행복도는 다르다. 행복도는 그날그날 얼마나 행복을 느끼느냐다. 어머니는 아기 때문에 잘 자지 못하고, 하루 종일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한다. 하루하루가 힘든 만큼 지금 행복한가를 묻는 행복도 점수는 낮게 나온다.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만족감은 있지만, 실제 하루하루의 생활은 힘든 것이다.
복권 당첨자의 행복도는 보통 사람과 별 차이가 없지만 삶의 만족감이 높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 점이 복권 거액 당첨자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기존 연구들은 사람들이 현 상태에 익숙해지면 행복감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봤다. 행복도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삶의 만족감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그리고 복권 당첨자들이 삶의 만족감이 높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재정적 안정감 덕분이다. 즉 복권 거액 당첨→재정적 안정감 증가→삶의 만족감 증가라는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보통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 두 가지가 옳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하나는 복권 거액 당첨자는 갑작스레 들어온 큰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대부분 써버릴 것이라는 오해다. “복권 당첨자가 나중에 불행해졌다” “파산했다” 같은 이야기가 워낙 많이 들려오다 보니 대다수 복권 당첨자의 삶이 오히려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권 당첨으로 불행해지고 파산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대부분은 당첨금을 잘 유지하면서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돈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자제력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바보가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삶의 만족감 높여
나머지 하나는 돈이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돈이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돈은 분명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돈이 많다고 밥 먹을 때 더 행복한 것도, 여행갈 때 더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이런 일들에서는 돈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많으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 삶 전반에 대한 만족감이 증가한다. 이런 만족감은 보통 자기 삶에 대한 통제감에서 나온다. 돈이 있으면 외부 환경에 덜 흔들리고 자기 삶을 통제하기 쉽다. 그 통제감이 삶의 만족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의 만족감은 높아진다. 큰돈은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돈을 추구한다는 건 자기 삶의 만족감을 높이는 주요 수단일 수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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