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net zero·탄소 순배출 제로) 정책을 펴는 세계 주요국들은 석유와 석탄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과시켜 청정에너지 및 전기차 산업 등을 집중 지원하며, 유럽연합(EU)도 환경 보호를 위한 산업을 적극 돕고 있다.
그 결과 전기차 충전소를 비롯한 전력망 수요가 급증한 데다 미국과 EU 송배전(送配電) 설비 교체 시기가 겹치고, 중동발(發) 초대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까지 더해져 세계 글로벌 중전기(重電機·초고압 변압기, 차단기 등) 업계는 역대급 호황이다.
국내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전력 설비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진전기(대표 황수·사진)가 대표적이다.
올해 창사 55주년인 일진전기는 초고압 송배전 및 변전(變電)용 케이블과 초고압 변압기, 차단기를 제조하는 종합 중전기 회사다. 세계에서도 모든 전력망 계통 기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찾기 어렵다.
한번 문제가 발생하면 대규모 정전 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초고압 전력 제품은 기술력과 품질 관리가 생명이다. 일진전기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기술과 품질 경쟁력으로 미국과 중동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2020년 최고 수준인 500kV 초고압 변압기를 미국에 납품했고 초고압 차단기는 세계적 수준인 420kV까지 개발했다. 고압 전력선도 대용량 교류 송전(AC) 케이블을 넘어 장거리 송전 핵심 기술인 초고압 직류 송전(HVDC)이 가능한 320kV HVDC 케이블을 생산했다. 최고 수준인 525kV HVDC 케이블 개발에도 진력하고 있다.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기존 초고압 절연개폐장치(GIS) 대신 국내 최초로 72.5kV 친환경 절연개폐장치(EGIS)를 개발해 기술력을 입증했다. 송배전 및 변전 시설이 고장 났을 때 전류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차단하는 EGIS는 해상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전력 계통의 핵심이다.
높은 기술 및 품질 경쟁력과 빠른 납기는 매출과 수주 성장으로 반영됐다.
지난해 연 매출은 2022년 최대 실적(1조1647억 원)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3분기 (누적)영업이익은 459억 원으로 2022년 영업이익(315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4분기까지 수주잔액은 9억6000만 달러로 2022년 말(6억1000만 달러)보다 3억5000만 달러 늘어 창립 이후 최초로 10억 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케이블 수주잔액도 싱가포르(1540억 원) 방글라데시(820억 원) 노르웨이(340억 원) 영국(160억 원) 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하며 2022년 말 3억9850만 달러(약 5160억 원) 대비 지난해 9월 말 5억8000만 달러(약 7500억 원)로 53% 늘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 동부 에너지 전문 기업과 4318억 원 규모 초고압 변압기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해 345kV 변압기 등 제품 15종을 2026∼2030년 순차 공급한다.
해외 수주량 증가로 증설 투자가 불가피해 다음 달 13일까지 1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확보된 재원으로 초고압 변압기 공장 증설에 682억 원, 초고압 케이블 공장 생산량 확대에 35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황 대표는 국내외 유수 고객사의 신뢰를 얻은 비결로 품질과 원가 경쟁력, 그리고 전력기기와 케이블 동시 생산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꼽았다. 특히 황 대표는 2019년 취임 후 품질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품질 문제를 개선했다. 그는 “고객사가 원하는 결과를 내놓기 위한 품질 우선주의는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저가 수주 금지와 품질 및 시장 가격에 맞는 제품 생산이라는 전략을 수립해 프로젝트별 설계 단계에서부터 적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력기기와 케이블을 동시에 제조하는 시너지 효과도 만만치 않다. 2022년 전남 임자도 태양광 발전소 프로젝트를 비롯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및 플랜트에 전력기기와 케이블을 합쳐 송·변전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황 대표는 “충남 홍성 공장에서 주야 2교대로 변압기 및 차단기 생산 라인을 가동하지만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유상증자가 전력 분야 글로벌 톱티어로 올라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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