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 알기 어려운 빌라보다 투명”
선호도 오르면서 임대료도 올라
경기 침체로 공급량은 줄어
수급 불안 현상 당분간 이어질듯
지난해 12월 말 직장인 조모 씨(27)는 취업 후 2년간 살았던 서울 성북구 보문동 빌라에서 성동구 도선동 오피스텔로 옮겼다. 을지로로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월세 부담이 55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높아지는데도 이사를 결정한 건 빌라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조 씨는 “전세사기 사건을 보면서 불안함을 떨치기 어려웠다”며 “그렇다고 아파트 전세금을 마련하긴 돈이 모자라 오피스텔 월세를 선택했다”고 했다.
전세사기 등의 여파로 젊은층 사이에서 오피스텔 선호도가 커지고 있다. 반면 오피스텔 공급량은 급감해 월세가 올라 세입자들의 부담이 늘고 있다. 오피스텔 수급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전세사기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뒤인 지난해 4∼12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은 9만5977건으로 2022년 같은 기간의 10만3636건에서 7.4% 감소했다. 반면 해당 기간 오피스텔 거래량은 4만8903건에서 4만6880건으로 4.6%만 줄었다. 지난해 거래량을 2021년과 비교할 경우 오피스텔은 거의 비슷했지만 연립·다세대는 2년 사이 8.4%나 줄었다.
상대적으로 오피스텔을 찾는 세입자 비중이 높아지면서 임대료도 오르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국 오피스텔 임대 수익률은 연 5.01%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20년 7월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매매가격은 떨어지는데, 임대료는 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 지난해 4분기(10∼12월) 수도권 오피스텔 월세는 전 분기 대비 0.18% 올랐다. 월별로는 지난해 6월 이후 6개월 연속 오름세다. 반면 빌라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전세는 2.51%, 월세는 0.45% 떨어졌다.
이처럼 오피스텔 거래량이 늘어난 배경에는 전세사기로 인한 ‘공포심 확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사기로 빌라를 기피하는 젊은층이 오피스텔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성모 씨(31)는 “지난해 12월 왕십리역 인근 빌라에서 오피스텔로 이사했다”며 “ 전세 보증금이 기존 2억3000만 원에서 2억8000만 원으로 올랐지만 시세를 알기 어려운 빌라보다는 오피스텔이 투명한 것 같다”고 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오피스텔은 거래가 빈번하고 가구수가 많아 시세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세사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며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이 70% 이하인 오피스텔을 고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문제는 오피스텔 공급량이 수요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의 연간 오피스텔 입주 물량은 지난해 1만4142채로 2020년 2만2187채 대비 8045채(36.3%) 줄어들었다. 업계에서는 올해와 내년 입주 물량은 1만 채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상승기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포함하는 등 각종 규제가 도입되면서 오피스텔 신축 공급이 급감한 것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호황기에는 아파트형 대단지 오피스텔이 쏟아지면서 공급이 늘었지만, 최근 경기 침체로 매매 수요가 급감하며 공급도 줄고 있는 추세”라며 “오피스텔·아파트 입주 물량이 같이 감소하고 있는 데다 고금리 등으로 오피스텔 월세는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 관악구 봉천동 낡은 모텔 자리에 새롭게 오피스텔을 올린 한 시행사 관계자는 “분양만 원활하게 된다면 오피스텔이 모텔이나 빌라에 비해 사업성이 훨씬 좋지만, 지금은 분양이 워낙 안 된다”며 “정부가 1·10 공급대책에서 단기 등록임대사업자를 부활시키기로 했지만, 어떤 혜택을 줄지가 결정돼야 그나마 앞으로 시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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