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이민’ 가는 동학개미]
개미들 韓증시 떠나는 이유는… ‘총주주환원율’ 美 92%때 韓 29%
“韓주식 배당 적고 장기 상승 불투명… 주가 조금만 올라도 금방 팔아치워”
애플-아마존 등 갈아타는 개미 늘어
“한국 주식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투자는 애국심으로 하는 게 아니다.”
직장인 정모 씨(28)는 국내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고 미국 주식에만 투자하는 자칭 ‘서학개미’다. 2022년부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사 모으고 있다는 그는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도 몇 년째 오르지 않고 있는데 한국 주식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거란 믿음이 생길 수가 없다”며 “반면 미국 주식은 주식창을 들여다볼 때마다 흐뭇하다”고 했다.
● 韓 주식은 ‘단타용’… 美 주식에 ‘몰빵’
최근 미국 강세장에 올라타 미 증시 예찬론자가 된 이들도 적지 않다. 강모 씨(29)는 올 초 한국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애플과 아마존, 구글 모기업 알파벳 등 미국 대형 기술주를 쓸어 담았다. 애플에만 1200만 원을 투자했다는 그는 “한국 주식은 배당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주에게 유리할 게 하나 없는데 최근에는 장도 좋지 않아 살 이유가 없다”며 “미국 주식에만 ‘몰빵’하려 한다”고 전했다.
한국과 미국 주식을 동시 보유 중인 개인투자자들은 변동성이 높은 한국 주식은 ‘단타용’, 성장 가치가 높은 미국 주식은 ‘장기 보유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강원 원주시에 거주하는 박모 씨(35)는 “한국 주식은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반면 애플은 계속 들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2차전지주 투자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경 에코프로와 포스코홀딩스를 매수했지만,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커지자 금방 팔아 치웠다. 박 씨는 “어차피 한국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를지 안 오를지 불투명하니 단타용으로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것이고, 애플은 가격이 조금 내려도 안 팔고 꾸준히 가져갈 예정”이라고 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와 미 나스닥지수 일간 수익률 3배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투자한 주부 신모 씨(64)는 “미국 주식이 연금보다 낫다”며 “이미 수익률이 수십 퍼센트 되는데도 더 오래 가져가고 싶어 팔기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 “주주 가치 확대해 증시 저평가 해소해야”
한국 증시는 낮은 주주환원율과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등에 발목 잡힌 지 오래다. 그 결과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동학개미와 서학개미 간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확대 등과 같은 주주 환원 정책에 있어 미국은 물론 여느 신흥국들보다도 뒤처져 있다. 글로벌 금융정보 제공업체 팩트셋(FactSet)과 KB증권 등에 따르면 2013∼2022년 평균 총주주환원율은 미국이 92%인 반면 한국은 29%에 불과했다. 신흥국(38%)과 중국(31%)보다도 낮다. 총주주환원율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 총액, 자사주 매입금 등 주주 환원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국내 기업들의 ‘쪼개기 상장’ 또한 증시 저평가의 대표적 요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7∼2021년 한국의 모자 기업 동시 상장 비중은 19.3%에 달한 반면 미국은 5.7%에 그쳤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물적 분할 후 모자기업을 동시 상장시키는 것은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는 한국의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불합리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동시에 투자자들의 장기 투자를 유인하는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배당소득에 세금을 매기다 보니 애당초 배당금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조금만 주가가 상승하면 팔아서 이익을 실현하려 한다”며 “장기 투자를 권장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짜여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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