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변화, 극복의 60년
MZ 취향 조명 브랜드로 변신
헤리티지 살리는 브랜딩으로
전 세계 하이엔드 시장 공략
2007년. 주요 8개국(G8) 회의에서 백열전구가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당하자 우리 정부 또한 2014년까지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 및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지막 백열전구 제조사’라는 타이틀을 지키며 백열전구가 지닌 따뜻한 빛의 가능성을 믿는 회사가 있다. 1962년 대구에 문을 연 일광전구다.
현재는 전체 매출 중 조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백열전구를 비롯해 다채로운 광원을 강점으로 내세운 조명 제품을 선보이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MZ세대 사이 ‘조명 맛집’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눈사람을 닮은 ‘스노우맨’은 연간 2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시그니처 제품이다. 60년 업력의 일광전구는 어떻게 젊은 세대의 선택을 받는 브랜드로 거듭났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1월 2호(385호)에 실린 일광전구의 리브랜딩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브랜드 협업으로 브랜드 인지도 높여
가정용 백열전구가 퇴출되자 관련 사업을 포기하는 제조사들이 줄을 이었고 국내에선 일광전구만이 백열전구 생산을 계속하며 명맥을 잇게 됐다. 김홍도 대표는 퇴출 대상에서 비켜간 장식용 전구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김 대표는 “백열전구는 인류 최초의 불인 모닥불과 가장 유사한 빛을 내는 전구”라며 “인류에게 가장 친숙하고 따뜻한 빛을 내는 백열전구의 감성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12년 에디슨의 전구를 닮은 ‘클래식 전구’, 2014년 긴 전선에 여러 개의 소켓을 달아 유럽에서 파티 용품으로 사용하는 ‘파티 라이트’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리브랜딩도 추진됐다. 패키지를 리뉴얼하고 홈페이지를 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도 개설해 ‘국내 마지막 백열전구 회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꾸준히 사진을 올리니 금세 팔로어 2만 명을 확보했다. 컬래버레이션도 적극 진행했다. 2014년 말, 당시 서울 유명 식당과 카페 10곳을 엄선해 제안서를 보냈다. “‘라이팅 디자인 스폿’에 선정됐으니 6개월 동안 무상으로 파티 라이트를 설치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제안서를 받은 모든 가게에서 하겠다고 답장이 왔다. 이렇게 파티 라이트로 꾸며진 카페, 식당의 사진은 SNS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2018년 아우디 신차 발표 행사에는 메인 컬래버레이션 회사로 참여했다. 아우디 또한 빛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자동차 회사다. 세계 최초로 풀 발광다이오드(LED) 헤드램프와 전방 상황에 따라 빛의 각도와 세기를 조절하는 매트릭스 LED 기술을 적용했다. 1000개가 넘는 일광전구의 백열전구가 새로 출시한 A4 차량의 위를 비췄다. 권순만 일광전구 디자인팀 팀장은 “표면적으로만 서로의 이름을 빌리는 협업이 아닌 ‘빛’이라는 일광전구의 본질과 헤리티지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협업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 독자적 디자인으로 승부수
일광전구가 조명 회사로 본격적으로 전환한 것은 2020년 말부터다. 클래식 전구는 월 1만 개가량 팔리며 캐시카우 역할을 했고, 파티 라이트 역시 루프톱 카페, 캠핑 용품으로 입소문이 나며 쏠쏠하게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 카피 제품이 난입했다. 해외에서 모티브를 얻은 제품이라 독자적인 디자인을 인정받을 수도 없었다. 일광전구라는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전구만으로는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마침 팬데믹 록다운(봉쇄)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 인테리어 붐이 일었다. 일광전구만의 디자인을 입힌 조명 제품 라인을 확대해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커머스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김 대표의 아들인 1990년생 김시연 이사가 마케팅팀 팀장으로 투입됐다.
김 팀장은 2021년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전시 부스에서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고객들의 선호를 파악했다. 유럽 선도 기업들의 제품 라인, 제품 수, 가격 등도 조사했다. 데이터에서 도출한 인사이트를 통해 권 팀장은 유리로 전등 갓을 만든 신제품을 기획했다.
그렇게 2021년 12월, 일광전구의 시그니처인 ‘스노우맨’과 형제 제품인 ‘스노우볼’이 탄생했다. 출시 직후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한 달에 100개 단위로 들어오던 조명 제품 주문이 수천 개로 훌쩍 뛰었다.
● 글로벌 하이엔드 시장 진출
조명 브랜드로 전환한 초기에는 편집숍들을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지만 제품이 주목받기 시작하니 국내 1세대 편집숍 ‘에이치픽스’ 등 하이엔드 편집숍에서 먼저 입점 제안이 왔다. 현재 일광전구는 국내 30여 개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중 10개에만 입점한 상태이다. 대중적인 플랫폼 중에서는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 왔고 감도 높은 큐레이팅을 선보인다고 평가받는 29CM에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오리지널 디자인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다.
올해 2월 개최되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는 2세대 스노우맨을 선보일 예정이다. AC(교류) 방식에서 국가 간 규제가 없는 DC(직류) 방식으로 전환하고 디테일 등 품질을 높인 제품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해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해외 하이엔드 편집숍에서도 러브콜이 오고 있다. 작년 10월 중국 상하이의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인 ‘아이유스’에서 판매를 시작했으며 미국 최고의 디자인 숍에서도 입점을 제안해 협상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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