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불면증치료제 지난달 첫 처방
“임상 활용해 평가받아야 급여등재”
업체, 시장진입 난항… 해외 눈돌려
獨, 자금 파격지원 30개 제품 등재… 日은 허가부터 급여등재까지 1년
지난달 서울대병원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인 ‘솜즈’를 처음 처방했다. 솜즈는 국내 기업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제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의 문이 열린 것이다. 2호 디지털 치료제인 ‘웰트 아이’도 상반기(1∼6월)에 첫 처방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웰트 아이 역시 불면증 치료제다.
디지털 치료제는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의료기기를 뜻한다. ‘3세대 신약’으로 불리면서 올해 56억 달러(약 7조5000억 원)인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30년에는 173억4000만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이 성장하기 힘들다.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등재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치료제가 폭넓게 처방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들은 독일이나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실정이다.
● 규제로 속도 더딘 국내 디지털 치료제
디지털 치료제는 특정한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야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 허가받은 제품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웹페이지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출시된 디지털 치료제는 대부분 기존 치료법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보조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 환자, 당뇨·비만 등 약을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만성 질환 환자가 늘면서 보조적인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깐깐한 행정 절차로 인해 기업들의 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서 디지털 치료제는 ‘중복 임상’을 거쳐야 해 건강보험 급여 등재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소 4년이다. 디지털 치료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사를 통과하더라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보의연)의 신(新)의료평가를 위해 다시 한번 임상을 진행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 관련 협회 관계자는 “식약처와 보의연이 검증하고자 하는 것들이 비슷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중 규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에임메드의 ‘솜즈’와 웰트의 ‘웰트 아이’ 모두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 등재는 되지 않은 상황이다. 3∼5년간 의료기관이 비급여로 처방하면, 이 기간 동안 수집한 임상 자료를 활용해 신의료평가를 받아야 정식으로 건강보험에 급여 등재를 할 수 있다. 신의료평가에 걸리는 시간만 250일이니, 급여 등재까지 못해도 4년 넘게 걸리는 셈이다.
● 獨 ‘파격적 자금 지원’, 日 ‘빠른 급여 등재’
디지털 치료제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과 일본은 한국과 상황이 딴판이다. 독일은 2019년 디지털헬스케어법을 마련했다. 이 법에는 디지털 치료제(DiGA)로 임시 등재되면 1년간은 제조사가 제시하는 가격으로 정부가 보상하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임시 등재된 디지털 치료제의 평균 건강보험 급여는 60만 원대다. 임시 등재 기간 수집한 임상 자료로 치료제의 효과를 증명하면 정식 등재도 가능하다. 현재 독일에 임시 등재된 디지털 치료제는 60개로, 이 중 정식 등재된 제품은 30개다.
일본은 ‘자금 지원’보다는 급여 등재의 ‘속도’를 높인 게 특징이다. 일본의 금연 디지털 치료제 ‘큐어앱’은 일본 의약품 및 의료기기 종합기구(PMDA)의 허가부터 건강보험 급여 등재까지 총 12개월이 걸렸다. 이후에 출시한 고혈압 보조 치료기기인 ‘큐어앱 SC’도 15개월 만에 급여 등재를 끝냈다. 기업으로선 그만큼 빠르게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한국에선 급여 등재가 늦기 때문에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기업은 독일이나 일본 진출을 고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지장애 개선용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 기업 이모코그는 이미 독일을 거점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독일지사 ‘코그테라 GmbH’를 설립하고 독일의 디지털 치료제 급여 체계에 등재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휴레이포지티브, 뉴로핏 등 일부 기업은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전략적으로 독일이나 일본을 선택하는 기업도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외 진출을 알아보는 기업도 있다”며 “대체로 작은 바이오 기업이 개발하기 때문에 급여 등재 시기는 기업의 존망(存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제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의료기기. 특정한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건강 정보를 단순 기록하는 스마트폰의 건강 앱과는 구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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