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막차” 대기업 회사채에 兆단위 뭉칫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5일 03시 00분


금리 인하 앞두고 개인-기관 줄매수
기업들 “총선전 유동성 확보” 맞물려
1월 전년比 51% 늘어난 14조 발행
업종 실적 따라 목표액 미달 회사도

올해 첫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조400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마지막 고금리 투자 기회라는 인식에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면서 모집 물량의 7배가 넘는 자금이 몰렸다. 수요예측은 회사채 금리와 발행 규모를 결정하기 전에 기관투자가가 참여해 진행하는 일종의 예비평가다.

신용등급이 BBB급으로 투자 적격 등급의 마지노선에 있는 두산퓨얼셀은 당초 제시했던 금리보다 크게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올해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개인들의 투자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은 더 높은 이자를 주는 A급 이하 회사채를 선호하고 있다”고 했다.

● 50% 넘게 늘어난 회사채 발행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는 총 14조7152억 원어치가 발행됐다. 1년 전(9조7398억 원)보다 51.1% 늘었다. 최근 5년 평균 발행 규모(8조3830억 원)와 비교하면 75.5%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 급증은 대기업이 주도했다. 1월 한 달 동안 SK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만 1조985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이 1조1000억 원을 발행하며 뒤를 이었고, 롯데그룹과 한화그룹도 각각 9350억 원, 9000억 원으로 1조 원에 육박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최근 회사채 발행이 크게 늘어난 건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미뤄 왔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말까지 기업들은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더라도 자체 보유 현금을 활용하거나 기업어음(CP) 등 단기 자금으로 버텨 왔다. 금리가 조금이라도 떨어지길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발행을 미룰 수 없게 됐다. A증권사 관계자는 “그간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했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4월 총선 이후 시장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심리도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자금을 주로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와 CP 등을 갚는 데 썼고 일부는 물품 대금 지급 등 운영 자금으로 활용했다.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유통 대기업 롯데그룹과 CJ그룹이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회사채를 발행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별 계열사의 위험이 그룹 전체로 번지기 전에 회사채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비우량 회사채에 개인 수요 많아”


개인들 역시 회사채 흥행몰이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달 개인들은 1조861억 원의 회사채를 사들였다. 지난해 12월(7493억 원)보다 44.9% 늘어난 규모다. 두산퓨얼셀은 지난해 6월에도 회사채 2년물을 약 6.5%의 금리로 발행했는데, 당시 국고채 2년물의 금리는 3.6%였다. C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채는 국고채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데다 비우량 회사채는 그만큼 또 이자가 많기 때문에 개인들의 수요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적이 부진한 일부 대기업은 수요예측에서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하기도 했다. 지난달 CJ ENM은 1300억 원을 모집했지만 매수 주문은 그보다 50억 원이 모자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건설사들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자신들이 제시한 금리의 최상단에서 즉, 좀 더 높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야 했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2분기(4∼6월)에는 시장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상돼 1분기(1∼3월) 내내 발행이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인하#회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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