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캐피털… 부동산PF 연체액만 1조1000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5일 03시 00분


은행-보험 절반 수준 대출에도
고위험 투자 늘려 부실 ‘부메랑’
일부 캐피털사 신용등급 하향
“연내 디폴트 나올수도” 우려

국내 한 캐피털 회사의 최대주주 A 씨는 보유 중인 기업을 팔기 위해 인수 후보군을 1년 가까이 찾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A 씨는 “금리가 낮은 시기에는 캐피털 회사로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어 금융권 오너들의 관심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연체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담 등으로 캐피털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부동산 PF 위기가 현실화된 가운데 캐피털사들의 연체액 부담이 금융업권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과 달리 고위험, 고수익 PF 대출에 주력해 온 것이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부메랑이 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차원에서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지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어 캐피털 업계의 부실은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캐피털 PF 연체액, 금융권 최대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캐피털 회사들의 부동산 PF 연체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총 1조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증권(8730억 원), 저축은행(5000억 원), 보험(5000억 원) 등 타 금융권과 비교할 때 가장 많은 수준이다. 캐피털 업계의 부동산 PF 대출액은 24조 원으로 은행(44조2000억 원)과 보험(43조3000억 원)보다 절반 가까이 적은데도 연체액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캐피털사의 주된 수익은 자금 조달 금리와 리스, 렌털 등 대출 금리의 차이인 ‘이자 마진’이다. 부동산 경기가 상승세를 그린 2017년부터는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부동산 PF 대출을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캐피털사들은 저금리 시기 부동산 호황기 때 중·후순위 대출과 브리지론(토지 매입 전 단기대출)에 집중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신용등급 A급 이하 캐피털의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과 브리지론 비율은 각각 150%, 83%로 저축은행과 증권 등 다른 업권보다 크게 높았다. 이에 신용평가사들은 PF 대출 건전성이 악화된 오케이캐피탈, M캐피탈, DB캐피탈 등의 신용등급 또는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노효선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캐피털의 PF 대출 부담은 타 금융권 대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A급 이하 회사는 부실 대출 정리 과정에서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올해 신용등급·실적 악화 본격화 우려
연초 이후 금융당국이 PF 리스크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캐피털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 25일 2금융권 임원들을 소집해 브리지론 예상 손실의 100%만큼을 충당금으로 쌓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감소세에 접어든 캐피털사들의 실적이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캐피털사의 작년 상반기(1∼6월) 순이익은 1조62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1.7% 줄어들었다. 자산 기준 업계 5위권인 오케이캐피탈은 지난해 3분기(7∼9월)까지 누적 순손실 규모가 1331억 원에 달했다.

캐피털은 별도의 수신 기능이 없어 유사시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 최대주주의 추가 자금 투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연내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거나 새 주인을 찾는 회사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후순위 PF 대출 비중이 높은 캐피털사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며, 대주주의 증자 여력이 부족한 회사는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높다”며 “일부 회사의 경우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피털#부동산pf#연체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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