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난에 빠진 K배터리]〈하〉 학사 육성부터 中에 밀리는 韓
中, 2020년 30여곳 대학에 전담학과
졸업생 본격 배출… 인력 수급 안정화
산학협력 통해 석박사도 우회 수혈… 韓, 전담과 설치 주요대 한곳도 없어
《韓, 학사 육성도 中에 밀려
167만 대 7만. 중국과 한국의 배터리 관련 학과 인력 배출 규모 차이다. 중국은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기업, 대학이 하나가 돼 ‘인해전술’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부터 정책적으로 배터리 학과를 주요 대학 30여 곳에 설치해 중장기 인재 양성에 나섰다. 올해 5년째를 맞아 졸업생들이 대거 배출될 예정이다. 이들은 기업 연구개발(R&D) 인재로 유입되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해 석박사 고급 인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고부가가치 배터리로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려 왔던 한국 산업계에는 인재 부족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앞으로 수년 내 한국 배터리의 기술 우위가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현지 기업, 대학, 협회를 직접 찾아 어떻게 배터리 인재를 육성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
7일 중국 저장(浙江)성 타이저우(台州)시에 있는 배터리 소재 기업 용타이(永太)테크놀로지 생산기지. 연구소에선 직원들이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전해질 실험을 하고 있었다. 전해질 효율을 높이는 첨가제의 질량을 최적화하는 과정이다.
농업·의료 화학 기업인 용타이는 2016년 배터리 소재 사업에 진출해 7년 만인 지난해 전해질 연간 생산능력 15만 t 규모를 갖추며 중국 내 5위권으로 성장했다. 2022년 매출 9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가운데 38%가 배터리 부문에서 나왔다.
용타이가 빠르게 사업구조를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연구개발(R&D) 인력 영향이 컸다. 용타이의 배터리 R&D 인력은 2016년 28명으로 시작해 현재 102명으로 늘었다. 이 중 30%가 석·박사급이다. 진이중(金逸中) 용타이 마케팅 총경리는 “여태껏 인재를 제때 못 뽑는 인력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며 “특히 중국 대학들이 2020년 배터리 전담 학과를 신설한 지 올해 5년차가 되면서 졸업생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중국은 배터리가 미래 먹거리라는 확신을 갖고 정부 주도 아래 기업과 대학이 하나로 뭉쳐 전문 인재를 집중 양성하고 있다. 매년 배출하는 학사급 인재 규모는 한국의 20배가 넘는다.
● 中 배터리 전담 학과 30여 곳… 전국 대학서 연 167만 명 배출
15일 한국교육개발원과 중국 교육부 등에 따르면 연간 대학 배터리 관련 학과의 학사 인력 배출 규모는 2022년 기준 중국이 167만 명인 반면 한국은 7만 명이다. 석·박사급에서도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각국 학계 추산 중국에서는 매년 배터리 관련 석·박사 인력이 1만 명가량 배출되는 반면, 한국은 500∼1000명에 그친다.
중국은 2020년부터 정책적으로 배터리 전담 학과를 만들어 인재 양성에 나섰다. 배터리 연구 성과나 전문가 수에서 상위권에 드는 시안자오퉁대, 하얼빈공업대, 톈진대 등 현재 30여 개 대학이 전담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화학, 물리, 전자 등 기존 이공계 전공을 기반으로 인재를 육성했다면 대학 전문성을 강화하고 기업 인력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저장 공학(ESSE)’이라는 과를 신설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ESSE과를 설립한 대학은 기존 정원에서 추가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줬다.
5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쉬얼만(徐爾曼) 중국전기차백인회(中國電動汽車百人會) 부비서장은 “중국은 어느 분야든 발전 기회가 보이는 산업이 있다면 대량의 자금, 인재를 집중 투입해 빠르게 발전시킨다”며 “CATL과 같은 톱티어 기업은 이미 안정적으로 인력들을 수급해 자체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백인회는 중국 정부가 출자한 중국 내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다.
쉬 부비서장은 “배터리 산업은 2010년 전후 1차전지(한 번 사용하고 나면 재사용이 불가능한 배터리) 시절만 해도 한국이 앞섰지만 지금은 중국이 전 세계 1등”이라며 “2차전지(충전을 통해 반복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가 미래 동력이라는 확신에 인력이 모여들고 학사와 석·박사 간 연봉 차이가 3∼4배씩 나다 보니 더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 석·박사 학위를 따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 기준 한국(배터리 3사) 점유율이 48.6%로 1위지만, 중국 시장까지 포함하면 중국이 60%를 차지해 1위다.
● 中 기업-대학은 공동 R&D, 인재 양성 활성화
중국은 기업과 대학 간 연구 및 인력 교류도 활발하다. 주요 배터리 기업과 대학들이 공동연구원 또는 별도 조직을 세워 R&D를 진행하면서 우회적으로 석·박사 고급 인력을 수혈하는 방식이다.
중국 1위 배터리 업체 CATL은 상하이자오퉁대와 2021년 ‘SJTU 미래기술대’를 설립해 배터리 고도화 연구 등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미래기술대를 거점 삼아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하거나 완성차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도모하는 것이다. 쩡위췬(曾毓群) CATL 회장이 명예원장을 맡고 원장, 객원연구원들도 모두 CATL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중국 2위 BYD는 난징항공우주대와 ‘신에너지 자동차공학기술 공동실험실’을, 4위 궈쉬안은 푸단대, 퉁지대와 각각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BYD와 궈쉬안은 각 대학과 R&D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정싱궈(鄭興國) 용타이 신에너지 총경리는 “용타이도 저장대와 함께 배터리 충전 속도 및 밀도를 고도화하는 연구 협력을 하고 있다”며 “기업은 당장 필요한 전문성을 대학으로부터 도움받고 또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능한 인재들이 기업에 영입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지방 소재 일부 대학들이 배터리학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경쟁력이 떨어져 수시로 정원 미달 사태가 일어난다. 서울 내 대학 및 KAIST, 포항공대 등 이공계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주요 대학 중에서 학부급 전담 학과가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다. 한양대가 삼성SDI와 손잡고 2022학년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2∼4학년 대상 ‘배터리 융합 전공 과정’이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주요 대학 8곳과 석·박사급에 한해서 계약학과 또는 공동연구센터를 만들어 산학 연계를 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한국이 고부가 배터리인 삼원계(NCM) 분야에서 중국보다 앞서고 있지만 언제 따라잡힐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첨단 산업의 핵심은 인재인데, 지금과 같이 인재 양성에서 중국보다 뒤처지는 상황이 이어지면 여태껏 가져왔던 기술 경쟁력도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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