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硏 철새 분변 수집 동행
전국 철새 도래지서 샘플 채취… 유전자 분석, 팬데믹 등 선제 예방
최근 亞지역 인체감염 사망 늘어… “백신 플랫폼 개발, 연구 최종 목적”
“물기가 많은 똥이 철새가 방금 싸고 간 거니까 그것만 담으세요.”
14일 오전 8시 경기 안성의 안성천 일대에서 난데없는 철새의 분변 수집이 시작됐다. 겨울마다 한국을 찾는 철새의 분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를 일으키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서다. 이날 분변 수집에 나선 장승규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연구원은 “일주일에 2, 3번씩 전국 철새 도래지를 돌아다니며 한 번에 150∼200개의 분변 샘플을 채취한다”며 “이 중 5%에서만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기 때문에 이런 똥을 ‘황금 똥’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최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이 AI에 감염되고 사망에까지 이르는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철새 분변 연구의 중요성은 특히 높아진 상황이다.
● AI 인체 감염 가능성 연구에 필수적인 새똥 분석
이날 확보한 철새 분변 샘플은 아이스박스에 실려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대전 IBS 실험실로 옮겨졌다. 실험실에서는 희석한 분변에서 원심분리기로 바이러스만 분리해낸다.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48시간 배양한 뒤 유전자를 증폭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바이러스의 ‘신원조회’에 해당하는 유전자 분석을 진행한다. 샘플 중 고병원성이면서 포유류 감염 가능성이 있는 위험군은 닭, 마우스, 페럿 등 동물 실험을 통해 공기 전파 가능성까지 확인한다.
IBS 연구진이 이토록 ‘황금 똥’을 찾아 분석하는 이유는 분변에 섞여 있는 다양한 AI 바이러스의 정보를 미리 파악해 팬데믹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다. AI 바이러스의 90%는 조류에게만 감염된다. 하지만 종종 포유류 및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변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IBS는 수년간 인플루엔자 800여 종을 모아 분석한 결과 2021년 철새 분변에서 발견한 H5N1형의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이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결합하는 부위에 변이가 발생해 인체 세포에 대한 결합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의 기관지를 그대로 본떠 만든 ‘미니 장기(오가노이드)’에 이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결과 인체 유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비슷한 감염 양상을 보였다.
●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모두 조류에서 기인
최근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AI 인체감염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달 13일 캄보디아에서는 한 형제가 AI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 중 9세 동생이 사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에서 63세 여성이 두 종류의 AI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하기도 했다.
조류에서 유래한 AI 바이러스가 병원성, 전파력이 강한 형태로 변이를 일으키면 대규모 팬데믹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1918년 ‘스페인 독감’, 1950년대 ‘아시아 독감’, 1960년대 ‘홍콩 독감’ 등 주요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모두 AI 바이러스에서 기인했다.
최영기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장은 “사람에게는 조류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를 방어하기 위한 면역이 없기 때문에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AI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로 국내에 유입됐는지, 최근 AI 바이러스 변이 추세를 파악해야 대응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최 소장은 “연구 중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기존의 인플루엔자 백신(독감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한지 등을 파악한다”며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최대한 많은 변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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