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시즌 3월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올해의 경우 경영권 분쟁이 한층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대기업 다수가 공익사업 등을 목적으로 산하 공익법인에 넘긴 지분이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부진한 국내 기부문화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아주기업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일 이후 올 2월 14일까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올라온 ‘소송 등의 제기·신청(경영권 분쟁 소송)’을 집계한 결과, 모두 180건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148건)보다 21.62% 늘어났다.
경영권 분쟁이 있거나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을 받는 기업의 경우 주총에서 이사 선임이나 정관 변경 등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해당 공시를 일종의 ‘주주 제안 선행 지표’로 볼 수 있다는 게 연구소 측 해석이다.
이 가운데 기업이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산하 공익법인에 넘긴 지분이 갈등의 불씨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한미약품그룹과 KT&G가 대표적이다.
한미약품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이 각각 4.9%,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가현문화재단은 한미약품 설립자인 고 임성기 회장의 부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이 2002년 세웠다. 임성기재단은 2020년 임 회장 사망 직후인 2021년 설립됐다.
그런데 올1월 한미약품그룹이 에너지 화학기업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통합은 송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이 주도했다.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통합에 반대했다. 두 사람은 OCI그룹이 대기업집단이므로, 두 재단의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장·차남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8.4%, 모녀 지분은 두 재단까지 합쳐 35.0% 정도로 알려졌다. 내달 주총에서 표 대결로 간다면 모녀 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반대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모녀 지분은 27.1%로 낮아져 장·차남이 유리해진다.
KT&G는 자사주를 KT&G장학재단 등에 출연한 사실이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FCP는 KT&G가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자사주 1000만여 주를 소각이나 매각하지 않고 재단·기금에 무상 증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전·현직 사내외 이사 21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KT&G가 이를 거부하자 FCP는 소송을 예고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부 기업만의 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기업이 대부분 공익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일 기준 82개 공시 대상 기업 가운데 84%에 달하는 69곳이 215개 공익법인을 보유 중이다. 이 가운데 총수 있는 집단의 공익법인이 197개(92%)이다.
게다가 이런 분쟁이 지속되면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기부문화의 활성화에 찬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2023년도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8점으로 조사 대상 142개 나라 가운데 79위에 머물렀다. 미국(5위) 영국(17위) 등 주요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승재 세종대 교수는 “국내법은 주요국과 비교해 지나치다”며 “과도한 의결권 제한은 폐지하고, 주식 취득 면세 한도는 미국 수준인 20%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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