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전쟁]
마이크론 “엔비디아에 HBM 공급”… 글로벌 3위, 삼성-SK에 양산 앞서
美기업, 자국우선주의 업고 맹추격… 삼성 “12단 HBM 경쟁 승기 잡을것”
글로벌 메모리 시장 3위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이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용 메모리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떠오르는 HBM 시장에서 점유율이 4∼6%에 불과하던 마이크론이 시장을 사실상 양분해 오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치고 가장 먼저 양산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이 양산 계획을 밝힌 8단 HBM3E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12단 HBM3E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 “8단 최초 양산” vs “12단 최초 개발”
26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5세대 HBM 제품인 8단 HBM3E의 양산에 돌입했으며, 2분기(4∼6월) 시장에 출시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H200’에 탑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마이크론은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 최초 양산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정면 겨냥했다. 마이크론은 “경쟁사 제품에 비해 최대 30% 적은 전력을 소비한다”며 “이 이정표를 통해 마이크론은 업계 선두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HBM은 기존의 D램을 여러 개 쌓아 데이터 저장 용량과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고성능·고효율 메모리 반도체다. 일반 D램보다 3∼5배가량 비싸다. AI 시대를 맞아 저장·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HBM은 엔비디아나 AMD의 AI 반도체 구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2022년 11억 달러에서 2027년 51억77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점유율이 미미하던 마이크론이 현재 시장의 주류인 4세대 HBM(HBM3)을 아예 건너뛰고 5세대로 직행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반기(1∼6월) 중 8단 HBM3E 제품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날 마이크론 주가는 전일 대비 4.02% 상승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구체적인 양산 규모와 수율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뒤질세라 삼성전자는 27일 최초로 8단보다 4개 층을 더 쌓아올려 처리 속도와 용량을 끌어올린 12단 HBM3E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12단 제품은 초당 최대 1280GB(기가바이트)의 대역폭과 현존 최대 용량인 36GB를 제공한다.
현재 HBM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도 12단 HBM3E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3월 중 개발이 목표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7∼12월) 12단 제품 시장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자체 개발한 적층 기술을 통해 하반기 12단 HBM3E 시장의 정면승부에서 승기를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국우선주의 업고 추격하는 美 기업들
최근 급성장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자국우선주의 정책과 빅테크 등 거대 고객사를 등에 업은 미국 기업들이 거세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특히 미국 빅테크들이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떨어지는 미 반도체 업체들의 고객사를 자처하고 나서며 판로를 마련해주는 상황이다.
마이크론의 HBM3E 고객은 엔비디아다. 현재 ‘챗GPT’에 탑재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는 SK하이닉스의 4세대 HBM(HBM3)이 주로 쓰인다. 이 시장을 추후 마이크론이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에 27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전일 대비 4.94% 하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인텔의 칩을 사주기로 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3위 인텔은 21일(현지 시간) 연내 1.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 양산에 들어가며, 해당 칩을 MS에 납품한다고 밝혔다. 2025년 2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TSMC보다 앞선 로드맵이다. 인텔의 해당 발표 자리에는 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석해 파트너십을 과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시장 개화를 앞두고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한편 기존 판도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거세다. 이를 미국 정부와 기업들이 주도하면서 다시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을 가져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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