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1년의 그늘]
작년 1만9813건…건당 평균 2억
부천 최다, 서울 강서-인천 부평 順
HUG 채권회수율 10%대 부실 우려
“전세가율 상한 설정 등 대책 마련을”
지난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발생한 사고 규모가 4조5097억 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전셋값 상승세 정점이었던 2022년 맺은 계약의 만기가 이어지는 만큼 전세사기 피해는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부천·서울 강서·인천 부평 피해 가장 커
28일 동아일보가 국민의힘 김학용·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에 접수된 전세반환보증 사고 건수는 1만9813건으로 전년(5728건)보다 246% 증가했다. 세입자 한 명당 평균 2억2761만 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금융기관에서 집주인 대신 갚아줬다는 의미다.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곳은 경기 부천시였다. 지난해 보증금 반환사고 금액이 3964억 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강서구(3832억 원), 인천 부평구(3109억 원), 인천 미추홀구(2890억 원) 순이었다. 서울 금천구(1222억 원),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1147억 원)·일산동구(876억 원) 등에서도 피해가 컸다.
이런 사고 증가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세계약 기간이 통상 2년인 만큼 올해에는 전셋값 급등기인 2022년에 체결한 계약의 만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가 대대적으로 알려지며 예방 대책이 나오기 시작한지도 아직 2년이 되지 않았다. 실제 HUG에서 올해 1월 한 달간 집계한 전세반환보증 사고액은 2927억 원으로 전년 동월(2232억 원)보다 31.1% 증가했다.
●정부가 대신 갚아준 보증금, 회수는 지지부진
지난해 2월 전세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해당 비극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다는 토로가 나온다. 이 지역은 소위 ‘건축왕’이라 불리는 남모 씨가 2864채, 약 2700억 원대 전세 보증금 사기 사건을 벌인 곳이다. 104채 규모 아파트에서 103채 세입자가 모두 전세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특히 경매가 진행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후순위 세입자가 많아 지난해 4월 말부터 1년간 경매가 유예된 상태다. 경매 재개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5월 전셋집 경매 재개를 앞둔 안상미 전세사기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 의문”이라며 “특별법까지 제정한 만큼 전세사기 피해를 정쟁화하지 말고 피해자 구제에 집중해 달라”고 말했다.
보증금을 대신 갚아줘야 하는 HUG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22년 HUG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로 13년 만에 처음으로 1126억 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때 보증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만 1064억 원으로 전체의 94.5%를 차지했다. 지난해 HUG의 순손실은 전년의 40배가 넘는 약 5조 원으로 추정된다. 보증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HUG 법정 자본금을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늘릴 수 있도록 주택도시기금법까지 개정됐다. 또 공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HUG 정관도 변경한 상태다.
하지만 HUG 채권 회수율은 2022년 24%, 지난해에는 10%대 중반으로 저조해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후 채권 추심, 경매 등으로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 절차가 미진한 것이다.
결국 경매에서 낙찰 금액이 보증금보다 적더라도 이를 먼저 받은 후 차액은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유찰 횟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보증금 회수 실익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 한해서다. 하지만 차액은 집주인에게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손실을 떠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세가율 상한 정해 ‘무갭투자’ 차단해야”
전문가들은 ‘제2의 전세사기’를 막으려면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안이 전세가율 상한제 도입이다. 이번 전세사기의 주 무대가 되었던 원룸, 소형 오피스텔 등에 한해 전세 보증금이 시세의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한선을 70%로 정하면 집주인이 나머지 30%는 자기 자본으로 마련해야 해 보증금만으로 주택을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를 막을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상한선을 넘는 보증금은 월세로 전환해 받도록 해야 전세사기 싹을 자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증금을 제 3자에게 맡겨 보관하는 ‘에스크로’ 제도 도입도 거론되지만 주택 시장 현실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취지는 좋지만 은행, 신탁 등 보증금을 일부 맡기게 되면 집주인은 그 감소분을 고려해 보증금을 높여 세입자에게 전가하려고 할 것”이라며 “집주인의 경제 능력에 따라 전세반환보증의 보증료율을 다르게 해 보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기업형 민간임대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임대보증금보증에 가입해 보증금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해 전세사기로부터 안전하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보다는 월세 위주로 사업 구조를 짜야 기업들이 임대주택을 공급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QR 찍으면 ‘전세사기 피해 1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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