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결제 연체율,‘손실 처리’로 낮춰… 미납해도 제재 수단 전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8일 03시 00분


서비스 도입 때 연체 정보 공유 금지
연체해도 불이익 없어… ‘악용’ 증가
1년 넘은 연체 추심 포기 손실 처리
“연체 정보 공유 모럴해저드 막아야”

지난해 A 업체의 ‘선구매 후결제(BNPL·Buy Now Pay Later)’ 서비스로 25만 원을 사용한 20대 김모 씨는 지금까지 돈을 한 푼도 갚지 않았다. 상환을 독촉하는 안내 전화는 수신 거부해 둔 지 오래다. A 업체 관계자는 “장기 연체해도 신용 및 금융거래의 불이익이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은 탓에 업체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일 치솟던 후불결제 연체율이 지난해 하반기(7∼12월) 들어 급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BNPL 업계는 채권 추심 전문회사 고용 등의 노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기 연체된 부실 채권을 장부에서 털어냈기 때문이다.

● 연체율 급락, 장기 연체 채권 ‘손실 처리’ 영향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파이낸셜(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3사의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2분기(4∼6월) 약 6% 수준에서 지난해 4분기(10∼12월) 1% 초반대로 떨어졌다. 특히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토스의 연체율이 7.76%에서 1.21%로 6%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이용 한도 심사를 강화하고 채권 추심 전문회사를 선임하는 등의 노력이 연체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지만 주된 요인은 따로 있다. 장기 연체 채권의 대규모 상각 조치가 연체율을 끌어내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연체 기간이 1년을 지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채권 추심의 의미가 없다고 보고 손실 처리한다”며 “토스는 2022년 3월 서비스를 개시한 만큼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연체 채권 상각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네이버페이 역시 2021년 4월 서비스를 개시한 뒤 1년 5개월이 지난 2022년 9월부터 장기 연체 채권 상각을 시작했다.

● 연체 정보 공유 없으면 ‘모럴해저드’ 방지 불가능

이 같은 ‘손실 처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후불결제 업체들의 항변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연체 고객의 제재 수단이라고는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뿐인데 금융당국에서는 연체율 관리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며 “업계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채권 상각에 나서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금융위원회는 2021년 후불결제 서비스를 허용하면서 ‘금융 소외 계층 포용’이라는 목적으로 이용자의 연체 정보 공유를 금지했다. 장기 연체 중인 고객이더라도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그칠 뿐 신용등급 하락 등의 제재를 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후불결제 소비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금융당국의 개선책 마련은 지지부진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업계의 요청 사항을 잘 알고 있고 관련 논의도 계속 진행 중”이라면서도 “현재 장기 연체 고객의 제재 방안은 사업자들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해 후불결제 이용액이 126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경우 금융당국이 먼저 나서 연체정보 공유를 권고하고 있다. 미 저축기관감독청(OCC)은 지난해 12월 후불결제 업체들에게 신용정보회사와의 이용정보 공유 등을 포함한 책임감 있는 리스크 관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후불결제 서비스 역시 연체 정보를 공유하고 장기적으로는 상환 노력에 따라 서비스 이용 금액에 차등을 두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후불결제#연체율#손실 처리#미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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