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업을 뒤로하고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이 사실상 무승부로 주주총회를 마무리 했다. 앞으로 고려아연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두 집안의 다툼이 더 첨예해 질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을 비롯해 올해 기업들의 방향을 정하는 3월 주총이 속속 열리고 있다. 경영권 다툼, 행동주의 편드의 반란 등이 주총의 주요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다. ● 고려아연-영풍, ‘한지붕 두가족’ 갈등 본격화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별관. 고려아연과 영풍 두 집안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된 후 고려아연의 첫 정기주총이 열렸다. 경호원들은 입구에서 일반 주주와 대리인 등 관계자를 제외하고 기자와 일반인 등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동업은 영풍그룹 설립부터 시작됐다.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했다. 그 동안 장씨 일가가 지배회사인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를,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맡는 방식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세, 3세로 내려오며 창업주 시기 단단했던 연결고리들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2년 최 창업주 손자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체제가 된 뒤 계열 분리 가능성이 본격화됐다. 현재 고려아연 측은 우호 지분을 포함해 33%, 영풍 측은 32% 가량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번 주총의 핵심 쟁점은 영풍 측의 ‘배당 증액 요구’와 고려아연 측의 ‘제3자 유상증자 허용 여부’다. 배당 증액 요구는 고려아연이 이겼다. 고려아연은 1주당 결산 배당으로 5000원, 영풍은 1만 원을 제안했다. 주총 참석자들은 배당금이 크게 늘어날 경우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고려아연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반면 제 3자 유상증자 허용 여부는 영풍 측의 승리로 끝났다. 고려아연 측은 외국 합작 법인뿐 아니라 국내 법인도 제3자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게 정관을 바꾸는 안건을 제시했다. 고려아연에 우호적인 국내 법인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 최종 부결 됐다. ● 행동주의펀드 반대, 주주가치 제고 기업도
28일 주총이 열리는 한미약품그룹도 OCI그룹과 통합 계획을 밝히며 가족 간 경영권 갈등으로 비화했다. 통합을 추진하는 창업주 아내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이를 반대하는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 간 싸움이다.
행동주의펀드의 반대 행보도 이번 주총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과 박 회장의 조카 박철완 전 상무 간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조카의 난’이다. 박 전 상무는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에 권리를 위임해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라는 주주 제안을 냈다. 반면 박 회장 측은 3년 간 50%만 소각하겠다는 입장이다. 2021, 2022년 주총에서도 박 회장과 박 전 상무가 경영권 다툼을 벌인 바 있다.
28일 KT&G 주총에서는 방경만 사장 후보자에 대한 선임 안건이 핵심 쟁점이다.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파트너스(FCP)와 IBK기업은행이 방 후보 선임을 반대하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표심이 결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기업은행은 지분 7.1%를 보유한 KT&G의 최대주주이고 FCP는 0.5%대 지분을 갖고 있다. 아직 입장이 정해지지 않은 국민연금은 6.6%다. 앞서 15일 삼성물산 주총에서도 행동주의펀드 연합이 배당 증액을 요구했으나 무산됐다. 국민연금이 회사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주주가치 제고에 나선 기업들도 주목된다. 현대자동차는 보유 자사주를 매년 1%씩 3년 간 소각하는 동시에 배당도 늘릴 계획이다. 기아도 다음달 중순까지 50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할 예정이다. 기아는 5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7936억 원 규모로 자사주를 소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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