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 최대 연구 프로젝트인 ‘호라이즌 유럽’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한다. 그동안 우리 예산을 써가며 참여했던 국제 공동연구를 유럽연합(EU)의 예산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학계에서는 “과학 연구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협력 국가를 다양화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5일 유럽집행위원회 연구혁신총국의 일리아나 이바노바 집행위원을 만나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 협상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가입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EU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총 7년간 955억 유로(약 138조 원)를 지원하는 세계 최대 연구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는 EU 회원국 및 인근 국가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최근 비유럽 국가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우리나라는 뉴질랜드, 캐나다에 이어 비유럽 국가 중에선 세 번째,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호라이즌 유럽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됐다. 준회원국은 협의를 통해 책정된 재정 분담금을 EU에 지불하고, 과제 선정 절차를 거쳐 EU의 호라이즌 유럽 예산으로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가입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내년부터 연구 참여가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미 제3국으로 호라이즌 유럽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총 30개 기관이 33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3국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비는 우리 정부가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지불해야 할 재정 분담금은 협정에서 전문이 공개되는 10, 11월께 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앞서 가입한 뉴질랜드의 분담금이 약 3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비슷한 규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분담금은 연구비 수혜 규모에 따라 사후에 추가로 납부하거나 또는 환급을 받을 수 있다. 유럽과 공동연구 지원사업을 수행했던 민기복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초반에는 EU에서 받는 연구비가 적을 수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 연구 기획을 하는 과정 자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최근 미국, 중국의 ‘자국 중심주의’가 강해지는 가운데 국제 협력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EU 대사를 지낸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유럽은 전 세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의 22%를 차지하고 있다”라면서 “호라이즌 유럽에 참여함으로써 유럽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다른 국가까지도 협력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다만 이번 협력을 실질적인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협력 경험이 많은 국내의 한 우주학계 연구자는 “40∼50개국이 경쟁하는 호라이즌 유럽에서 과제가 채택되려면 최소한 4∼5월에는 연구 기획서 준비가 시작돼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연구 협력 방향성을 마련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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