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Inside Out]
‘제주맥주’ 매각으로 본 수제맥주
팬데믹 기간 ‘집콕’ 타고 인기몰이… 젊은층 하이볼 등 문화 변화에도
편의점 판로만 집착하며 변신 못해… 제주맥주 2년 연속 110억대 적자
‘홈술’ 문화로 인기몰이를 했던 수제맥주가 추락하고 있다. 국내 수제맥주 업체 1호 상장사인 제주맥주가 최근 경영권을 매각하면서 ‘위기론’에 더 불을 지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 독특한 개성으로 승부했던 수제맥주의 몰락은 대체재 급부상과 가격 경쟁에서의 부담, 특이함에 대한 피로감 등이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실적 추락 거듭한 수제맥주
27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제주맥주의 지난해 매출액은 224억 원(연결 기준)으로 전년 240억 원 대비 6.7% 줄었다. 2021년 5월 코스닥 입성 당시 2023년 매출액 목표로 제시한 1148억 원의 19.5%에 불과하다. 2022년과 작년 각각 116억 원, 11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곰표 밀맥주로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세븐브로이맥주도 지난해 24억여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매출액은 85억 원으로 전년(303억 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주맥주는 22일 주식 864만 주(14.8%)와 경영권을 더블에이치엠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금은 주당 1175원으로 101억5600만 원이었다. 3년 전 공모가 3200원보다 63% 낮은 가격이다.
● ‘환경적 영향’ 등에 업고 성장
수제맥주가 2020년 전후로 급성장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수제맥주는 팬데믹 기간 ‘집콕’ 트렌드로 큰 수혜를 봤다. 업소용 주류 소비가 급감하면서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유통하는 가정용 주류 소비가 전체의 70%까지 치솟았다. 소비자들이 대기업 맥주 브랜드 외 다양한 제품을 접할 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바뀐 주류법도 수제맥주 업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2020년 맥주 주세법이 종가세(출고가에 비례해 세금 부과)에서 종량세(출고량에 비례해 세금 부과)로 바뀌었다. 출고가가 높은 수제맥주로서는 다른 맥주보다 세금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주류 위탁생산이 허용되면서 수제맥주는 대량생산까지 가능해졌다. 2019년 하반기(7∼12월)부터 1년 넘게 이어진 ‘노 저팬(No Japan)’ 운동으로 일본 맥주의 대체 수요로 인기를 얻은 것도 한몫했다.
● 자체 경쟁력 확보 실패가 추락 원인
하지만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의 급성장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달콤한 성장’에 취해 기존 맥주 강자들과 싸울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부 요인들이 하나씩 사라지자 수제맥주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엔데믹을 기점으로 식당에서의 주류 소비가 회복됐다. 집에서의 소비량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위스키를 중심으로 하이볼 같은 ‘믹솔로지(Mix+Technology)’가 젊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수제맥주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큰 매출 성장을 이뤄냈으나 위스키나 하이볼, 와인 등 타 주류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라고 분석했다.
수제맥주가 판로를 편의점에만 몰두한 점이 악수가 됐단 평가도 있다. 편의점의 ‘맥주 4캔 1만 원(현재는 1만2000원)’ 마케팅에 따라 납품단가를 맞추다 보니 ‘고품질’이라는 수제맥주만의 장점을 잃어버린 채 단순히 흥미에만 집중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됐다는 얘기다. 수제맥주 업체들은 제품군 확대와 글로벌 진출 등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세븐브로이는 지난해부터 젊은층 수요가 몰리는 하이볼 시장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제주맥주를 인수한 더블에이치엠 측은 “중국 등 해외 수제맥주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라며 “향후 제주맥주를 글로벌 F&B 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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