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NOW]
먹는 즐거움과 건강 사이의 균형
‘탕후루’ 먹고 ‘제로슈거’로 해소
맥주소비 줄어도 무알코올맥주 성장
식단 관리용 스마트폰 앱도 인기
‘헬시플레저.’
건강을 뜻하는 ‘헬시(healthy)’와 기쁨을 의미하는 ‘플레저(pleasure)’의 합성어로 건강을 즐겁게 관리한다는 의미다. 헬시플레저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강에 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역설적으로 자극적인 음식은 여전히 인기다. 입안 전체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마라탕과 혀가 다른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탕후루, 그리고 칼로리 폭탄을 떠올리게 하는 약과. 이들은 왜 하필 건강 열풍과 함께 유행할까.
흥미로운 점은 건강한 음식을 찾는 사람과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동일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점심으로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으면서도 야식으로 매운 족발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을 식품업계에서는 먹는 즐거움과 건강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고 해서 ‘푸드밸런스’라 부른다. 기꺼이 허용할 만한 일탈 수준을 마음속에 정해 놓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며 건강과 쾌락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다.
푸드밸런스 트렌드에서 주목해야 할 첫 번째 현상은 극단적인 맛의 인기다. 매운맛이 대표적이다. 배달의민족 주문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음식 메뉴의 옵션에서 매운맛과 관련된 표현이 포함된 주문 건수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에는 2021년 대비 44.2%나 상승했고, 2023년에는 전년 대비 13.1% 더 상승했다.
극단적으로 달콤한 맛을 추구하는 흐름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하나만 먹어도 달콤한 메뉴를 두 개, 세 개씩 결합해 극단적인 단맛을 추구한다. 탕후루의 인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훨씬 더 달콤한 디저트가 소셜미디어에서 주목받고 있다. 롤업젤리는 설탕에 색소를 가미해 얇게 펼친 젤리다. 둥글게 말아 먹는 젤리라고 해서 ‘롤업’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롤업젤리를 그냥 말아서 먹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에 젤리를 감싸 먹는 젤리쌈이 유행한다.
푸드밸런스 트렌드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현상은 ‘제로 식품’의 인기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후 돌아오는 심리적인 죄책감을 없애고자 극단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찾는 것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 세계 제로슈거 식음료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22조7200억 원으로 2027년까지 연평균 4.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에서도 제로칼로리를 대표하는 제로콜라를 넘어 제로밀키스, 제로맥주 등 각종 제로 상품이 인기다.
알코올도 제거 대상이다. 과거 무알코올 맥주는 ‘임산부용 술’이란 별명이 붙은 비주류 상품이었다. 이런 무알코올 맥주가 최근 주류 시장의 경쟁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2023년 미국의 전체 맥주 판매 성장률은 1% 수준에 불과했지만 무알코올 맥주는 35%나 성장했다. 미국 식료품점 매출 기준으로 하이네켄·버드와이저를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린 맥주 역시 무알코올 맥주인 애슬레틱(Athletic)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맥주의 나라’로 여겨지는 독일에서도 일반 맥주 소비는 줄었지만, 무알코올 맥주 소비는 늘고 있다. 일본에서도 대형 주류업체 중심으로 무알코올 제품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국내시장도 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이와 유사한 궤적을 그리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드밸런스 트렌드가 나타나는 배경으로는 소비자가 가진 정보량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음식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섭취하는 음식에 대한 영양 정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각종 서비스 덕분에 영양 정보를 살피고 식단을 균형 있게 관리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떠케어2.0’은 하루 동안 섭취한 음식 사진을 업로드하면 영양성분은 물론이고 칼로리까지 알아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인아웃’이란 앱은 다이어트 목표에 따라 앞으로 음식을 얼마나 더 먹어도 되는지 알려준다.
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뭄·에볼라·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으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렇지만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먹는 즐거움과 건강 추구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새로운 맛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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