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엔진 아시아 뉴7]
‘메이크 인 베트남’ 앞세워 ICT 육성
LG전자, R&D 인력 5년새 5배로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그룹 계열사 국내외 개발자 100여 명이 참여한 코딩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 우승자는 LG전자 베트남 연구개발(R&D) 법인의 후인떤이 책임이었다. LG그룹 국내 개발자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 온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베트남 출신이 최고의 코딩 실력을 보였다.
중국을 대신할 ‘차세대 공장’과 성장하는 시장으로 여겨졌던 베트남이 R&D 전진기지로 진화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와 다낭에 있는 LG전자 베트남 R&D 법인에선 현재 자동차 전기 및 전자장비(전장) R&D 인력 1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 직원은 주재원 6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 채용 직원이다. 2019년 R&D 인력이 200여 명이었는데, 규모가 빠르게 커져 지난해 1월 750여 명의 R&D 조직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베트남이 R&D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정부 정책 변화의 영향이 컸다. 베트남 정부는 아웃소싱 생산기지 역할에 국한된 ‘메이드 인 베트남(Made in Vietnam)’을 넘어 자체적인 생산 역량을 갖춘 ‘메이크(Make) 인 베트남’을 목표로 하며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현지 대학들은 IT 전문 인력을 길러내며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탰다. 관광지 이미지가 강한 다낭시는 SW파크를 꾸려 기업을 유치하는 등 지자체들도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탄 LG전자 베트남 R&D 법인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완성차 제조사의 주문을 분석해 기초적인 전장 기능 개발 및 테스트를 주로 맡아 온 베트남 개발자들의 역할이 핵심 기능의 설계까지 확장됐다.
“인구 1억 베트남시장 선점”… 생산기지서 R&D거점으로 진화
[창간 104주년] [신성장엔진 아시아 뉴7]〈3〉 베트남 글로벌 전진기지 삼은 LG 세탁기 공장 자동화, 북미시장 수출… ‘현지 판매 1위’ 中-日경쟁서 우위 개발자에 본사 직원과 협업 제공… LG 코딩전문가 베트남서 절반 배출
“처음에는 전체 연구개발(R&D) 과정 중 20%를 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60%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고요.”
2020년 2월부터 베트남에서 R&D 조직을 이끌고 있는 정승민 법인장은 베트남 개발자들의 역량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베트남 R&D 법인은 LG전자의 자동차 전기 및 전자장비(전장) 관련 소프트웨어(SW) 개발을 맡고 있다.
베트남에선 매년 약 6만 명의 정보기술(IT) 관련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한국만큼 능력을 갖췄는지는 미지수였다. 정 법인장은 ‘성장하고 싶다’는 베트남 개발자들의 동기를 중촉시키는 방향으로 길을 터줬다. LG전자 SW 전문가로 선정되면 매달 별도 수당을 지급하고 ‘1인 1과제’ 형식의 개인 프로젝트 기회를 줬다. 우수 개발자에게 한국에서 본사 직원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그랬더니 베트남 개발자들이 쉬는 날에도 회사에 나와 스터디 모임을 가질 정도로 자기계발에 욕심을 냈다.
그 결과 지난해 LG전자가 선정한 코딩 전문가 10명 중 5명이 베트남 R&D 법인에서 배출됐다. 1등도 베트남 개발자가 차지했다. 국내외 1000여 명의 개발자를 대상으로 경연을 진행한 결과다. 지난해 11월 열린 LG전자 해킹대회에서도 베트남 개발자 3명으로 이뤄진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베트남에서 LG전자 R&D 법인은 ‘경쟁이 강하고 기회가 많은 곳’으로 통한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약한 베트남에서 지난해 이직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 R&D부터 생산, 판매까지 베트남서 완결
2일 오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2시간가량 동남쪽으로 달려 도착한 항구 도시 하이퐁 장주에 공단에 위치한 LG전자 생산공장. 총 3개 동 중 1동 2층에서는 자동차와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부품인 텔레매틱스가 한창 생산되고 있었다. 자동화율을 높여 케이스에 배터리, 인쇄회로기판(PCB)을 설치하고 나사를 조이고 검사하는 과정 대부분이 로봇으로 이뤄졌다. 직원들은 검사 공정 중 일부에만 참여했다.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구축했을 때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강점은 단연 저렴한 인건비다. 베트남은 지역마다 최저임금이 다른데 가장 높은 1지역을 기준으로 봤을 때도 월 468만 동(약 25만 원) 수준이다. 중국 상하이나 선전 등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 그친다. LG전자 하이퐁 공장의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 등을 생산·조립하는 라인에선 직원 수십 명이 일렬로 서서 컨베이어벨트 위로 지나가는 부품을 점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LG전자 하이퐁 공장은 향후 경쟁력까지 고려해 자동화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세탁기 모터를 생산하는 라인의 경우 40개 공정 중 알루미늄 선을 꺾어 고정하는 공정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공정에 자동화를 적용했다. 원자재 가격 등 중국보다 뒤처지는 부분까지 감안해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LG전자는 인프라 등 생산 여건을 고려해 동남아 거점마다 주력 제품을 두는 방식으로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태국은 에어컨, 인도네시아는 TV, 베트남은 세탁기와 전장을 맡는 식이다. 베트남에서 생산한 27인치 드럼세탁기와 모터는 북미 시장으로 보내진다. 현재 3개 동으로 이뤄진 하이퐁 공장에는 3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LG전자 전장 제품의 약 절반, 세탁기의 약 10%를 생산하고 있다.
● 한중일 격전지 베트남서 세탁기 1위
베트남은 작년 4월 인구 1억 명을 돌파한 인구 대국이다. 하노이가 중심이 된 북부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의 영향을 받아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수요가 크다. 또 습도가 높아 탈수·건조 성능도 중요하게 본다. 반면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실속형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다. 열대 기후지만 건기엔 습도가 낮아 실외 활동을 많이 한다.
LG전자는 베트남 세탁기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베트남에서 팔린 세탁기 4대 중 1대꼴로 LG 제품이다. LG전자는 빠른 탈수와 건조 기능 등 기술력과 특허를 경쟁력으로 꼽고 있다. 특히 하노이 프리미엄 시장에선 세탁기와 건조기가 한 몸으로 이뤄진 워시타워가 인기를 끌며 ‘기술력=LG전자’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호찌민에는 베트남 ‘도이머이 세대’(1986년 도이머이 정책 수립 후 태어나 자본주의 경제를 체험하며 성장한 2030)를 겨냥한 체험공간 ‘어나더 사이공’을 조성했다. 총 5층 건물에 게임이나 프리미엄 가전 ‘오브제컬렉션’ 등으로 전시공간을 꾸렸다. LG베스트샵과 같은 브랜드 매장이 아닌 현지 유통업체 중심 가전 판매가 이뤄지는 베트남에선 보기 힘든 체험공간이다.
현재 베트남 가전 시장에서는 한중일 경쟁이 거세다. 세탁기는 LG전자, 에어컨은 일본 다이킨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TCL과 하이센스도 가전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향후 베트남 가전 시장의 승부는 증가하는 중산층에서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중저가 제품 위주로 소비 중인 베트남 고객이 프리미엄, 신가전 시장으로 관심을 돌리면 LG전자는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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