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토지 소유자들이 조합을 결성해서, 기존 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를 다시 짓는 걸 말하죠. 그 재건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곳이 나옵니다. 마포주공아파트.
얼마 전 ‘마포주공아파트’란 제목의 책이 출간됐습니다. 그만큼 국내 아파트 역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인데요.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일환으로 마포형무소 농장터에 지은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였습니다.
1962년 준공된 10개 동 6층짜리 마포주공아파트(642가구) 당시로선 보기 드문 고급 현대식 아파트였습니다. 입식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건 물론, 단지 안에 놀이터와 운동장, 분수대까지 있었죠. ‘연예인 아파트’라 불리는 대표 부촌으로 자리 잡으면서 각종 영화 배경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아파트가 노후화되자 준공 25년이 된 1987년 마포아파트 입주민들이 뭉쳐서 ‘가옥주모임’을 결성합니다. 국내 첫 재건축 추진 위원회였죠. 사실 그땐 우리나라에 재건축에 관한 규정조차 없었을 때인데요. 그해 12월 재건축 규정(주택건설촉진법)이 생겨났고, 이듬해인 1988년 12월 마포아파트가 처음으로 재건축사업 승인을 받습니다.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호 건설’을 약속하고 주택공급에 한창 열을 올리던 시기입니다. 마포아파트 용적률은 87%밖에 되지 않았죠. 이를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면 집주인은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좋고, 정부는 서울 시내에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으니 윈윈이었습니다.
물론 재건축 추진 과정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습니다. 세입자 반발이 극심했고, 철거반원과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는데요. 1994년 7월 16, 17층짜리 아파트 14개 동(982가구)의 마포삼성아파트로 재건축됩니다. 국내 최초 재건축 단지로 기록됐죠. 이제 그 마포삼성아파트가 준공 30년을 눈앞에 두고 있군요. 만약 국내 최초의 ‘재재건축’ 아파트가 탄생할 수 있다면, 그 유력한 후보지입니다.
용적률 마법과 강남 불패신화
1987년 주택건설촉진법에서 처음에 정한 재건축 연한은 20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20년이 지나면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수리하느니 새로 짓는 게 낫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0년대에 접어들자 서울 강남 일대에도 재건축 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강남지역은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돼 개발이 시작됐죠. 이 지역에 처음 들어선 아파트가 1972년 논현동 영동공무원아파트였고요. 길동시영·구반포·삼성AID 아파트 준공이 1974년, 잠실3단지가 1975년이었습니다. 초창기 아파트들이 20년을 채워가면서 집주인들도 재건축 꿈을 키우게 됐는데요. 모두 용적률 90% 안팎 저층아파트였습니다. 당시 정부가 법으로 정한 재건축 아파트 용적률은 무려 400%. ‘200만호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1990년 정부가 300%이던 제한을 400%로 확 풀어놨는데요. 자고로 정비사업에서 용적률이란 ‘헌법’과 같은 존재이죠. 용적률 100%도 안 되는 저층 아파트에 400% 용적률을 적용한다는 건 사실상 ‘재건축 투기’ 길을 열어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런 기대감에 불을 붙이는 정책이 발표됩니다. 1993년 2월 건설부가 준공 후 20년이 채 되지 않았더라도 아파트가 낙후됐거나 도시미관을 크게 해치면 재건축을 할 수 있게 기준을 더 완화했죠. 그해 1월 청주 우암상가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곧이어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아파트 붕괴사고를 막겠다며 재건축을 더 쉽게 만든 겁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재건축 투자 열기가 확 달아오릅니다. 당시는 이미 200만호 건설이 끝난 뒤, ‘서울엔 이제 아파트 지을 땅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던 시점입니다. 그런데 수익성 있는 노른자위 입지에 자리 잡은 기존 아파트를 재건축할 길이 열렸으니, 투자자들이 몰려듭니다. 지은 지 15년 넘어 재건축을 바라보게 된 아파트값이 급등했고요. 건설사들이 재건축 수주전에 앞다퉈 뛰어들어 무이자로 1억원 넘는 이주비를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전례 없는 과열 경쟁이 벌어졌죠.
용적률 낮은 저층 아파트를 골라 사서 재건축하면 1억원 이상도 남길 수 있다는 공식이 이때 자리 잡습니다. 지방에서 서울 재건축 아파트를 사러 올 정도로 투자 열풍이 불었는데요.
1995년 동아일보는 이렇게 전합니다. “새집보다도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가 값이 더 많이 오른다. 준공 후 5년에서 10년 사이인 집값은 오히려 떨어지기도 한다.(…)이미 15년 이상 된 아파트들은 재건축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투자이익을 기대하긴 곤란하다.”
1996년 도곡 주공1단지 2억에 샀으면…
하지만 ‘강남 재건축 대박’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벽이 남아 있었습니다. 잠실, 반포, 청담·도곡 지역 저층아파트 단지 대부분이 ‘저밀도 아파트 지구’로 묶여 있었던 거죠. 애초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6층 이상 아파트를 지을 수 없게 서울시가 못 박아 놓은 단지였습니다.
아파트가 좁고(15평 내외), 배관도 낡아서 못 살겠다며 주민들은 아우성이었습니다. 잠실 시영아파트나 주공1단지는 임시 조합을 설립해 시공사까지 미리 선정해놓고 압박했죠. 한동안 서울시 입장은 완고했습니다. “도로, 상수도, 주차장 등 주변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든다”는 이유였는데요.
그렇게 수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1996년 11월 마침내 서울시가 총 5개 지구(잠실, 반포, 청담·도곡, 화곡, 암사·명일동)의 고층 재건축을 허가한다고 발표합니다. 총 5만여 가구를 7만 가구로, 용적률 90% 안팎이던 걸 285%로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었죠.
부동산 시장은 ‘강남의 얼굴이 바뀐다’며 환호했고요. 언론과 전문가들은 ‘3난’이 닥칠 게 뻔하다고 비판했습니다. 3난이란 자재난, 교통난, 전세난이었죠. “재건축이 완료되면 강남·송파구 교통량은 현재(1996년)의 2.3배, 서초구는 2.1배가 될 것”이라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추정이 나왔습니다. 지금 강남 교통난을 그때 이미 예견한 셈이죠.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좀 살펴볼까요. 재건축 예정인 저밀도 단지 중 도곡 주공1단지가 가장 투자가치가 높다는 기사가 실렸는데요. 그때 당시 ‘13평형 매매가 2억+금융비용 9600만원+추가분담금 1억5000만원’으로 계산하면 2001년 완공 시 43평 입주까지 드는 비용이 약 4억5000만원이었습니다. 인근 럭키아파트 45평형(4.9억~5.3억원) 시세보다 저렴했죠.
실제로는 이 단지는 예정보다 늦은 2006년에나 완공됐는데요. 그래도 남는 장사였던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도곡 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도곡렉슬 43평의 현재 시세는 32억원 안팎입니다.
IMF 때 죽었다 부활한 재건축
여기까지만 보면 규제가 재건축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물론 사업 승인권이 지자체에 있으니 당연히 지자체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요. 그렇다고 규제만 왕창 풀어준다고 재건축 사업이 다 되는 건 아닙니다. 건설경기와 금리 같은 외부환경이 다 받쳐줘야만 계속 나아갈 추진력이 있죠. 1996년 환호했던 재건축 시장은 이듬해 바로 고꾸라집니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죠.
시장엔 한파가 몰아칩니다. 주택건설사가 잇따라 부도에 처했고요. 살아남은 건설사는 재건축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며 줄줄이 기존 계약을 취소합니다. 할부금융사가 중도금대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돈줄도 막혔고요. 무엇보다 정리해고 피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분양받을 사람이 없죠. 재건축은 올스톱됩니다.
흔히 공급 위축은 2~3년 시차를 두고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다고 얘기하죠. 2000년대 초반이 딱 그랬는데요. 죽어있던 재건축 시장이 2년 만에 다시 깨어납니다. 재건축 수주를 위해 건설사들이 상품권과 전자제품을 뿌리고,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는 등 수주경쟁은 더욱더 극성스러워졌죠. 계속 규제를 풀기만 했던 정부가 본격적으로 재건축 규제 강화에 나선 것도 이 시점입니다. 소형주택 건설 의무제(2001년), 후분양제 도입(2003년), 용적률 25% 임대아파트 의무화(2005년), 재건축 연한 40년 연장과 초과이익 환수법 제정(2006년) 등이 줄이어 나옵니다.
욕망의 시장에서 패배자는 누구?
시대와 관계없이 이런 재건축 수주 활황기가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꼭 불거져 나오는 이슈가 있습니다.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입니다. 달콤한 약속을 쏟아냈던 시공사들이 착공을 앞두고는 각종 비용 발생이 추가됐다며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하죠. 건설사가 출혈경쟁을 불사하며 달려든 사업장일수록 공사비 갈등이 벌어지는 법입니다. 지난 30여년간 재건축 사업에서 건설사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아 왔죠.
공사비 증액 분쟁의 승리자는 물론 건설사였습니다. 그럼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조합원일 것 같지만, 대체로 아니었습니다. 바로 일반 분양자를 포함한 무주택자들이죠.
잠실 저층 단지 중 가장 처음 재건축에 성공한 잠실 주공4단지(레이크팰리스) 사례를 볼까요. 2003년 시공사가 3년 만에 공사비를 37% 올린다고 통보하면서 조합원 반발이 상당히 컸던 곳이죠. 34평의 추가부담금이 6890만원으로 불어났기 때문이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이 금액이 327만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대신 일반 분양가가 평당 1200만원에서 1990만원으로 대폭 상승했죠. 공사비 증액 부담을 일반 분양에 떠넘긴 겁니다.
도대체 그렇게 비싸게 주고 누가 사냐는 말이 나왔지만, 막상 2004년 분양 당시 경쟁률은 최고 335대 1. 그 가격에도 팔린다는 신호를 주면서 이후 나머지 단지 분양가 역시 비슷한 수준에 맞춰졌습니다. 높은 분양가는 연쇄적으로 주변 시세까지 들썩이게 만들었죠.
일부의 욕심이 부동산 시장 전체를 교란시켰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예나 지금이나 재건축은 철저한 ‘욕망의 시장’입니다. ‘각자 욕망에 충실할 것’ 이외의 다른 규칙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죠. ‘사인 간 계약’이라며 추가 부담금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갈등에 대해 행정당국이 수수방관하는 것 역시 30년째 그대로이고요.
재건축은 한국만의 독특한 시스템입니다. 수백, 수천 세대가 사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한 번에 허물고 다시 짓는 건 다른 데선 찾아보기 어렵죠. 용적률을 끌어올려 사업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용적률의 매직’ 덕분에 꽤 오랫동안 이 신기한 시스템이 유지됐는데요. 그 마법의 수명이 이제 다 되었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최근 이어집니다. 이제 재건축을 재건축할 시점이 된 걸까요. 그렇다면 다음엔 무엇이 올까요. By.딥다이브
옛 아파트 단지 사진을 찾다 보니, 재건축이 만든 풍경의 변화가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지개벽, 상전벽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인데요. 동시에 좋은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과연 재건축이 아닌 무엇이 채워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식 정비사업인 재건축의 시작은 마포주공아파트입니다. 1987년 당시 노태우 정부의 ‘200만호 주택 건설’ 정책과 맞물려, 서울 요지에 신규 주택공급을 늘리는 수단으로 재건축이 시작됐죠.
-1990년대가 되자 20년 연한을 채운 강남지역에 재건축 바람이 불어옵니다. ‘용적률 높여 재건축하면 1억원은 번다’는 용적률 게임의 공식이 자리 잡으면서 투기 열풍이 일었고요. 정부의 규제 완화가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후에도 건설경기와 금리 흐름, 규제 변화에 따라 재건축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했는데요. 호황기가 지나가면 어김없이 시공사와 조합의 공사비 갈등이 불거지곤 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데요. 다만 용적률의 마법이 점점 수명이 다해간다는 점이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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