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금리인하 지연-중동 리스크 영향
엔비디아 시총 하루새 296조원 증발
AMD-마이크론-인텔-퀄컴도 하락
“AI칩 수요 지속… 침체는 없을 것”
19일(현지 시간) 인공지능(AI) 칩 최강자인 미국 엔비디아의 주가가 10%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300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줄줄이 하락했다. 물가 상승 압력에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중동 리스크까지 발생하며 투자 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영향이다. 일단 ‘AI발 주가 과열’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도체의 봄’이 사실상 도래한 만큼 반도체 시장 침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는 전 거래일 대비 84.71달러(10.0%) 폭락한 주당 76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낙폭은 2020년 3월 16일(―18.5%) 이후 가장 컸다. 19일 종가는 2월 21일(674.72달러) 이후 가장 낮았다. 하루 만에 증발한 엔비디아 시총은 2150억 달러(약 296조4850억 원)에 이른다. 인텔(1460억 달러)과 퀄컴(1760억 달러)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시총보다 규모가 크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다른 반도체 기업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AMD(―5.4%), 마이크론(―4.6%), 인텔(―2.4%), 퀄컴(―2.4%) 등의 주가가 하락하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4.1% 떨어졌다.
반도체 주가 하락은 고금리·고물가 상황에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며 주요 기술주들이 타격을 입은 영향이 크다. 최근 월가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금리를 한 차례만 내리는 데 그치거나, 아예 내리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올 초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탄 AI 및 반도체 관련 종목에 대한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동발 리스크가 커지면 국제 유가와 물가가 상승하고, 금리 인하 시기가 지연된다. 결국 PC나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회복이 더뎌지는 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만 TSMC가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18일(현지 시간)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한 TSMC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메모리 제외)의 성장률을 ‘10% 이상’에서 ‘약 10%’로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성장률 전망치도 ‘약 20%’에서 ‘10%대 중후반’으로 내렸다. 전 세계 AI 칩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자체 설계한 AI 칩 제조의 대부분을 TSMC에 맡긴다.
반도체 업계 ‘슈퍼을’인 네덜란드 ASML이 최근 발표한 1분기 신규 수주액이 36억 유로로, 시장 전망치 54억 유로를 크게 하회하고 매출액도 시장 기대를 밑돈 점 또한 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는 주가가 단기적으로 조정을 받을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TSMC는 AI 반도체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매출의 10%로 커지고 4년 내 20%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모바일, PC 등의 제조사들이 쌓아뒀던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대부분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며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의 감산 효과까지 더해져 올해 말까지 실적 개선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정학적 리스크나 물가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할 수 있지만 AI 반도체는 올 한 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고물가 상황에서 줄어든 PC, 스마트폰의 돌파구도 온디바이스 AI로 찾는 상황인 만큼 첨단 AI 반도체 수요는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