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무는 개, 견주가 반대해도 안락사 명령 가능[세종팀의 정책워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9일 11시 00분


27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사람을 무는 개를 안락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견주가 반대하더라도 관할 시장, 도지사 권한으로 인명 사고를 낸 개에 대해 기질평가를 실시해 안락사를 실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동안은 개가 사람을 물어 피해를 주더라도 견주에만 관리 책임을 물어 형법상 과실치상 등으로 처벌할 수 있을 뿐 사고를 일으킨 개에 관해선 규정이 없었습니다. 동물보호법상 맹견으로 적시된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로트바일러, 아메리칸 스테퍼드셔테리어, 스태퍼드셔불테리어 등 5종에 대해서만 견주의 동의 없이 격리 조치를 취할 수 있었죠.

사람을 문 개가 반복해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더라도 맹견 5종에 포함되지 않으면 최소한의 강제 조치도 취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사람을 문 개는 견종과 상관없이 ‘맹견’으로 등록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

2021년 5월 발생한 ‘남양주 개물림 사망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사건 발생 당일 오후 3시경 경기 남영주시 진건읍 일대 야산에서 산책 중이던 59세 여성 A 씨는 산을 오르던 중 갑자기 나타난 대형견에게 물려 3분 넘게 사투를 벌이다 도망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습니다.

신장 150㎝, 몸무게 25㎏에 달하던 풍산개와 사모예드의 잡종인 이 개는 인근 불법 개 농장에서 사실상 방치 상태로 사육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자 개 농장을 운영하던 60대 B 씨는 ‘자신의 개가 아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한번 사람 문 개, 다시 공격성 나타날 수 있어”

이 때문에 사고견을 B 씨 앞에 데려가 개의 반응을 확인하는 사상 초유의 개-사람 대질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죠. 결국 B 씨는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돼 지난해 4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반면 사고를 일으킨 개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동물행동 전문가가 ‘한번 사람을 문 개는 다시 공격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안락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A 씨 유가족 역시 안락사를 원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유명한 반려견 행동 전문가 강형욱 씨도 한 방송에서 지자체에서 안락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기도 했죠.

“훈련사로서는 (남양주 사고견이) 훈련으로 교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책임이나 직책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락사시킬 거라고 강하게 표현할 것 같다. 동물단체에서는 안락사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하고, 지자체에서는 안락사해야 한다. 절대 지자체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심판하거나 생각을 결정하지 않아야 한다.
(강형욱 씨, 2021년 5월 31일 KBS 2TV ‘개는 훌륭하다’ 방송 中)

개 물림 사고 예방 포스터. 게티이미지.
당시 남양주시에서 사고견에 대해 안락사를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개정 전 동물보호법엔 유기견 등에 대해서만 인도적 처리(안락사) 규정이 있을 뿐 주인이 있는 개에 대한 강제 조치 규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동물보호단체가 사고견을 보호하겠다고 나섰고, 보호자가 있는 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던 남양주시는 이들에게 사고견을 보냈습니다. 해당 사고견이 훈련으로 교화가 가능한지, 사고 재발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평가하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남양주 사망 사고견, 가정에 입양될 수도
현재 동물보호단체는 사고견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입양을 할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남양주 사고견’, ‘성격 활발함’ 등과 같은 소개 문구와 함께요. 혁명이는 사고 재발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가정에 입양될 수 있는 셈입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교화 훈련이 잘 이뤄졌다면 다행이겠지만요.

개정 동물보호법은 개 물림 사고를 일으킨 개를 모두 안락사하겠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관할 시도지사는 반려동물 행동 지도사 등 전문가 3인으로 구성된 기질평가위원회를 통해 사고를 일으킨 개를 ‘맹견’으로 등록하고 사육 허가를 받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육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맹견을 키울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해당 사고견 사육으로 인해 공공의 안전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된다면 시도지사는 사육 허가를 거부하고, 심의를 거쳐 안락사할 것을 명할 수 있습니다.

관할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기질 평가를 거쳐 물림 사고가 반복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개정법 도입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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