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가속화로 환경 예측 어려워
의도된 계획으로는 경영 한계
플랜형 아닌 플롯형 전략으로
장기 비전에 집중해 성과 거둬야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성공적인 경영 전략의 특성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계획-실행-통제’ 패러다임이 해체, 재구성되고 있다. 환경 분석과 예측을 통한 계획과 실행이라는 ‘플랜형 전략’은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 경영 전략은 마스터 플랜이나 상황별 시나리오가 아닌 각본 없는 드라마, 목적지를 모르는 로드무비와 비슷해지고 있다. 계획과 실행이라는 논리적 연역 방식으로는 디지털 시대, 경영의 성공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드러나면서 전략에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는 논의가 곳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4월 2호(391호)에 실린 ‘플롯형 전략’ 아티클을 요약해 소개한다.
● 플랜이 아닌 플롯에 집중하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원리로 플롯(Plot)을 내세웠다. 플롯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단어의 어원에서 그 뉘앙스를 짐작할 수 있다. 플롯의 어원에는 비밀 계획(secret plan)이란 의미가 포함돼 있다. 비밀 계획이란 공개된 계획과 달리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반전의 충격을 주기 위해 독자와 관객에게 클라이맥스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를 속이려면 진실을 감추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진실보다 더 그럴듯한 거짓을 내세워야 한다. 이때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된다.
경영 전략도 훌륭한 반전 스토리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주인공이 바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머스크가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이를 허황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팰컨 9이라는 재사용 로켓의 발사와 지상 회수에 성공함으로써 로켓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물론 재사용 로켓 개발은 화성 이주라는 비전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으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나치게 원대한 계획으로 인한 회의적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머스크의 우주 사업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재사용 로켓으로 인공위성 발사 비용이 파격적으로 낮아지면서 대량의 인공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한 위성 인터넷 사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2000년경 모토로라가 추진했던 이리듐 프로젝트는 66개 위성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했지만 머스크의 위성 시스템 스타링크는 이미 위성 수천 개를 쏘아 올렸고 궁극적으로는 1만 개 이상의 위성 시스템을 지향한다. 화성 이주라는 비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때 위성 인터넷이라는 또 다른 플롯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머스크의 사업 전개에는 이런 플롯이 자주 보인다. 2022년 공개된 테슬라의 옵티머스라는 휴머노이드는 서툰 걸음과 빈약한 기능으로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다. 영화에서 보던 휴머노이드에 비하면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보행 동작과는 무관한, 손을 활용하는 단순 버전의 로봇이 테슬라의 자동차 공장 기가팩토리에 설치되면서 조립 생산성과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이 역시 머스크의 비밀 계획, 즉 플롯이었던 셈이다.
바둑의 격언에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있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 관심을 유도한 후 방치된 서쪽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화성으로 관심을 유도한 후 지구 저궤도를 장악하고, 휴머노이드에 집중하게 한 후 기가팩토리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머스크의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런 머스크의 행보는 사내외에 비전 선포식을 거행한 후 분기별, 연도별로 달성 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공개 계획이 아닌 은폐된 노림수, 비밀 계획으로서의 경영 전략을 잘 보여준다.
● 단기 성과 지표에 동요는 금물
계획은 단기, 중기별 상세 스케줄과 과정, 목표가 있다. 하지만 플롯은 주인공조차 예상 못 한 스토리로 계획된 반전은 반전이 아니다. 결국 기다림이 필요하고 대부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일본의 괴짜 편의점 돈키호테는 1980년 만들어진 회사로 이미 그 업력이 반세기에 달한다. 압축 진열, 심야 영업, 보물찾기 등 독특한 영업 방식은 초기 생존을 위한 역사적 산물로 독자적인 철학과 경험이 장기간 숙성된 결과다. 이를 모방한 신세계의 삐에로쇼핑은 2018년 사업을 시작했으나 만 3년이 채 안 돼 모두 문을 닫았다. 돈키호테의 몇몇 외적 요소를 모방한 출발도 조급했지만 중단은 더욱 성급했다.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너무 이른 결정으로 새로운 시도에 대한 트라우마만을 남겼다. 학습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졸속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성공을 ‘기간 내 양적 목표 달성’으로 정의한다면 많은 반전 스토리가 도중에 좌초하고 말 것이다. 플롯형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드러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진정성 있는 비전으로 세상과 겨루며 진정한 의미가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끈기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더욱 악화하기 전에 발 빠르게 손절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준은 경영 성과의 좋고 나쁨이 아닌 회사의 비전과 합치하느냐로 결정해야 한다. 만약 신세계가 추구하는 비전이 재미와 감성이었다면 폐점은 보다 신중히 결정했어야 한다. 지각변동이 수시로 일어나는 전환기에는 언제, 어디서 반전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단기 성과보다는 회사의 비전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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