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쉴 새 없이 터지는 게 기술 유출 사건이다. 삼성 3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반도체 공정 기술을 인텔에 빼돌리려다 붙잡힌 엔지니어, 삼성 반도체 공장 설계를 그대로 본떠 중국에 복제 시설을 지으려던 전직 임원, 미국 마이크론에 이직하려다 제지당한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담당 연구원 등 굵직한 기술 유출 사건이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첨단기술의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며 제도 사각지대는 기술 유출범들이 범죄를 저지르기에 좋은 토양이 되고 있다. 솜방망이 형량과 시대에 뒤떨어진 법체계, 곳곳에 뚫린 감시망 등으로 규율하려다 보니 유출을 막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할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서 지난해 11월 통과시킨 이후 묵혀져 있는 상태다.
법안은 산업스파이에게 내리는 벌금형 상한을 기존 15억 원에서 65억 원으로 높이고, 고의로 유출한 범죄자에게 가중처벌을 하는 내용 등이다. 이 밖에 해외 기업과의 인수합병(M&A)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해 처벌 및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50여 개 항목이 개정안에 담겼다.
법사위는 1월 한 차례 살펴본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지나친 권한을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 등이 제기되자 국회가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5월이 지나면 21대 국회는 끝나고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그럼 새 국회에서 법안을 또 발의해야 하고 상임위 심사도 다시 거쳐야 한다. 그렇게 최소 6개월은 지날 것이다. 국회가 손 놓는 사이 지금도 한국 첨단기술을 노리는 탈취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이를 가장 반기는 이는 해외 경쟁사들일 것이다. 이견이 첨예한 법 조항은 덜어내고, 당장 시급한 사안부터 처리하는 등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21대 국회에서 처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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