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연초 예상했던 범위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가서 올해 큰 폭의 실적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매출이 다시 적자로 돌아서지 않으면 다행이에요.”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최모 씨(52)는 해외에서 디스플레이 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그는 “작년 하반기(7∼12월)만 해도 10만 원 정도 했던 수입 부품 가격이 현재 26만 원까지 올랐다”며 “(대기업) 고객사에 대한 납품사 간 경쟁이 치열해 부품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처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올해는 흑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들어 영세기업들의 파산 신청이 급증하면서 코로나19가 절정이던 시기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물가, 고금리 장기화에 이어 강달러 기조까지 가세하며 이른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위기가 영세기업들을 짓누른 결과다.
● 법인 파산 신청 2배로 급증
7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법인들의 파산 신청 건수는 439건으로 전년 동기(326건) 대비 약 34.7%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최고조였던 2021년(204건), 2022년(216건) 등과 비교하면 100% 넘게 늘어난 수준이다. 신청 법인의 대다수는 영세기업으로, 대출로 연명하다가 이자 상환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 절차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의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금년도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역대 최대(1657건)였던 지난해를 뛰어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어려워진 영세기업들이 빚을 갚아 나가는 회생 대신 사업을 아예 포기하는 파산 절차를 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올 1분기 파산 신청 건수(439건)는 회생 신청 건수(387건) 대비 13.4%(52건) 많았다. 이 같은 데드크로스 현상은 지난해(파산 1657건, 회생 1602건) 처음 나타났는데 올해 더 심화된 모습이다.
대출금을 못 갚는 영세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의 합계)의 연체율은 0.70%로 1년 전(0.47%)보다 0.23%포인트 상승했다. 2년 전(0.32%)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소성가공 업체를 운영 중인 백모 씨(58)는 “고물가로 인해 저희에게 원재료를 건네주는 대기업들이 1년 새 자재 가격을 1.5배로 인상했다”며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는 경쟁사들 탓에 판매가를 올리지 못해 고스란히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 환율 상승에 비명
이 같은 상황에 올 2분기(4∼6월) 들어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영세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수출 중소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 영향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영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하다고 판단한 원-달러 환율 수준은 1262원이었다. 이는 7일 마감한 원-달러 환율(1361원)보다 약 7.84% 낮은 수준이다. 환율은 지난달 16일 장중 1400원까지 올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공식 구두 개입에 나서기도 앴다.
경기 김포시에서 무역회사를 운영 중인 현모 씨(44)는 “매년 3분기(7∼9월) 정도에 향후 환율을 예측한 뒤 이듬해 경영 계획을 구상하는 편”이라며 “올 들어선 미국의 고금리 기조와 함께 중동 전쟁 등 대외 변수까지 끊이지 않아 작년 말에 마련해 둔 계획들이 무의미해졌고, 어쩔 수 없이 적자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바라보는 경기 전망은 나날이 우울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15일부터 22일까지 307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기전망을 조사 결과, 기업들의 5월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는 79.2로 전월 대비 1.8포인트, 전년 동월 대비 4.6포인트씩 각각 하락했다. 경기전망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경기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업체가 그렇지 않은 업체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2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 갔다.
김규섭 IBK경제연구소장은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건전성 관리, 고금리로 인한 유동성 부족 등으로 영세기업들의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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