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도미노 위기]
시행사, 미분양 속출에 유동성 위기
건설사 187곳 폐업 13년만에 최다… 저축은행 등 대출손실 14조 육박
정부 찔끔찔끔 대책, 수습에 역부족
국내 대표 부동산 개발 시행사인 네오밸류는 지난달 임직원 70여 명 중 40여 명을 내보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현장에서 미분양이 속출하자 자금난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대형 시행사 위기를 PF발 부동산 위기론의 ‘전조 증상’으로 보고 있다.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이나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로까지 ‘도미노 충격’이 가해질 가능성이 커서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135조 원을 넘어섰다.
12일 나이스(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2금융권인 저축은행과 증권사, 캐피털의 PF 대출 예상 손실액은 최대 13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경매시장에서 감정평가액 대비 최종 낙찰가율이 하위 25%에 들어갈 것을 전제로 한 보수적인 추정치다. 업계별로는 캐피털 5조 원, 저축은행 4조8000억 원, 증권사 4조 원 등이다.
PF 현장이 무너지면 지분을 가진 시행사는 물론이고 시행사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때 지급 보증을 서 준 건설사, 그리고 마지막에는 금융권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 부동산 시장에선 지방 PF 현장을 중심으로 ‘준공후 미분양’이 늘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1∼4월 폐업 신고를 한 종합건설사는 187개다.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할 때 금융위기가 끝난 2011년(222건) 이후 가장 많다. 금융권에선 저축은행의 위험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다. 총 자산 대비 부동산 PF 대출 비중이 17.5%로 증권사(4.1%)나 여신전문금융회사(7.4%)보다 크게 높아서다.
정부가 지방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리츠(CR리츠)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PF사업장 토지 인수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LH가 2조 원 규모로 지난달 진행한 건설사 보유 토지 매입 사업에 대한 건설사 신청액은 전체 사업의 2.7%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부실 사업장의 질서 있는 퇴장은 물론이고 건설 현장의 자금 유동성 위기를 넘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전체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걸 막으려면 악성 미분양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행돼야 한다”며 “과세 기준에서 지방 미분양 주택을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대책 등과 관련한 법 개정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강남 노른자 PF사업도 위태… 구조조정 미루다 위기 반복
‘사업성 보장’ 강남-용산도 돈줄 막혀 주요 건설사 11곳 리스크 10조 넘어 정부, 경기회복 바라보다 늑장대응 올들어 위기설 반복돼 불안감 증폭
서울 강남구 개포동 도시형생활주택인 ‘대치 푸르지오 빌라드’ 75채가 2일 8번째 공매 절차에서도 주인 찾기에 실패했다. 강남 노른자위인데도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업 시행사(대치176PFV)는 이스턴투자개발(42.9%), 대우건설(42.9%), 키움증권(7.2%)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3월 만기 도래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주택 78채 전부를 공매로 넘겼는데 지금까지 겨우 3채만 팔린 것이다.
12일 부동산 및 금융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 침체가 국내 주요 시행사의 유동성 위기로 심화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이미 돈줄이 막히면서 ‘연쇄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말 시공능력 순위 16위 태영건설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신청 후 PF발 위기가 현실화했는데도, 부실 현장 구조조정 등 정부 대책 시행이 늦어지면서 사태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성이 보장돼 있다던 강남이나 용산 등의 현장도 시장 침체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알짜 입지에 고급 주거시설을 준비하던 한 시행사는 분양 단계인 본PF로의 전환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사가 시행사가 분양 계약자를 책임지고 확보하는 ‘임의분양률’을 30%에서 60%로 올렸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사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PF 사업은 개점휴업 상태”라며 “PF 대출 심사는 10건 중 1건도 통과하기 쉽지 않아 사업 현장에서 돈줄이 마르고 있다”고 했다.
PF사업은 토지 매입 자금을 확보하는 브리지론을 시작으로 시공 및 분양 단계인 본PF로 넘어간 뒤 수분양자 분양대금으로 앞서 받았던 PF 대출금을 상환하는 구조다. 금융사는 통상 본PF 단계에서 시공사의 책임준공이나 보증 등을 대출 요건으로 내건다. 미분양이 발생하면 그 책임이 건설사로 직접 전이될 수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올 초부터 총선 이후 건설사 줄도산을 뜻하는 ‘4월 위기설’이 돌았다. 지금은 다시 ‘5월 위기설’, ‘6월 위기설’ 등으로 불안감이 계속되는 상태다. 실제로도 건설사 위기는 현실화하고 있다. 태영건설 외에도 광주의 한국건설(시공능력 99위)이 지난달 법인 회생(법정관리)을 신청했다.
나이스신용평가 분석에 따르면 현대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등 국내 주요 11개 건설사의 책임준공 약정금액은 61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잠재 손실 3조8000억 원에 PF 보증 6조3000억 원을 더하면 리스크 규모가 10조 원이 넘는다. 육성훈 나이스신평 선임연구원은 “최근 PF 상황으로 인한 건설사 유동성 부담이 심각해지다 보니 계열 지원 여력을 포함한 재무 여력 확보가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부동산 침체 여파는 금융권 중에도 제2금융권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축은행업권은 지난해 5633억 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총 자산 대비 17.5%인 22조1000억 원에 이른다. PF 연체율도 6.9%로 상대적으로 높다. 증권업의 경우 자본 3조 원 이상 대형 증권사 9곳과 중소형 증권사 20곳의 올해 주요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만기 도래액이 각각 6조9000억 원, 3조4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금융업계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PF 부실에 따른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2022년 말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부실 리스크가 본격화했는데 부동산 경기 회복을 기대하며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부실 규모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인하에 따른 부동산 경기 회복을 예상하며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사업장 정리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며 “PF 부실에 중소 증권사나 일부 저축은행의 경우 타격이 상당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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