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반도체 업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10조 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업계가 요구하던 직접 지원 방안이 포함되지 않아 기업들의 숨통을 틔우는 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을 발표한다. 전날(12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도체 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10조 원 이상의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할 반도체 지원 정책의 주요 골자는 △금융 지원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세제지원이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제조시설 등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10조 원 이상의 간접 재정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정책금융이나 재정·민간·정책금융 공동 출자로 조성한 펀드로 자금을 조달해 대출이나 보증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올해 종료 예정인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 부총리는 “기업·학계 등 민간과 적극 협력해 국가전략기술 R&D·투자세액공제 범위 확대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반도체 첨단패키징 선도기술개발 사업’(5569억 원), ‘첨단반도체 양산연계형 미니팹 기반구축 사업’(9060억 원) 등 대규모 사업의 예비타당성심사도 조속히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반도체 전 분야를 대상으로 대규모 지원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업계 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만 업계의 공통된 요구였던 직접 지원에 정부가 선을 그은 데다 지원 정책이 나온 시기도 선진국에 비해 늦어 기업들의 투자 여력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00조 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EU가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따돌리고 자국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집행한 보조금은 810억 달러(약 111조 원)에 달한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투자에 총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중 반도체 공장 생산 보조금만 390억 달러(약 52조 원)다. 미 행정부는 이미 자국 기업인 인텔에 85억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발표했으며,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와 삼성전자에도 66억 달러, 64억 달러의 보조금을 약속하며 자국 내에 생산시설을 짓게 했다.
EU는 반도체 지원에 430억 달러(약 63조 원)의 실탄을 마련했다. 독일 마그데부르크 지역에 360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는 인텔은 이미 투자 비용의 3분의 1(110억 달러) 수준의 보조금을 받았다. 유럽 반도체 기업과 TSMC의 합작법인에는 투자금의 절반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된다.
일본 또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53억 달러(약 34조 60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167억 달러(약 23조 원)를 구마모토 TSMC 파운드리 공장과 라피더스의 홋카이도 공장 등에 지원한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 반도체 지원에 1420억 달러(약 194조 원) 이상을 지출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국들이 노골적인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반도체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직접 지원은 1조 3000억 원에 불과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반도체 지원 방안과 관련해 “경쟁국은 정부에서 먼저 나서 세제혜택과 보조금을 주면서 기업을 유치하려고 한다”며 “팹리스나 소부장 기업들은 영세한 측면이 있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면 기업의 숨통이 더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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