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마케터가 아기띠 개발에 뛰어든 이유[BreakFirst]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0일 0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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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 대표의 영감의 원천은 ‘불편함’이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코니 턱받이’도 그의 불편함에서 시작했다. 그는 ‘아기의 침을 받아 주는 제품인데 왜 이렇게 건조가 느릴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흡수력과 건조력을 높인 턱받이를 만들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아, 또 터졌다.’

첫째 아이를 낳은 후 40일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모유 수유를 하던 임이랑 코니바이에린 대표(39)는 목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습니다. 1년 반 전 시작된 목 추간판탈출증이 재발한 겁니다. 완전히 회복되기 전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을 몸이 버티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의사가 입원을 권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얼굴을 내려다보며 젖을 먹이는 행복은 쉬이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급한 대로 몸에 맞는 아기띠를 찾아보았습니다. 대부분 너무 무겁거나 복잡했습니다. 직구로 일본, 미국 제품까지 사용해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적당한 제품을 찾는 것으로 타협했겠지만, 임 대표의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심플한 아기띠를 만들어보자. 망해도 불사르고 망하자.’

160g의 초경량 아기띠는 그렇게 세상에 나와 세계 각국에서 120만 개나 팔려나갔습니다.
제품을 포장하고 있는 임이랑 대표와 남편 김동현 씨. 두 사람은 티켓몬스터에서 만났다. 김동현 씨는 티몬 창업자였고, 임 대표는 인턴이었다. 김동현 씨는 티몬을 떠나 코니바이에린의 사업총괄을 맡고 있다. 코니바이에린 제공


외국어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퇴사 후 육아를 하다 아기띠를 만들게 되셨다고요.

티켓몬스터 마케터로 일하다가 첫 아이를 낳으면서 퇴사했어요. 모유 수유를 하다가 출산 40일 만에 목 디스크(추간판탈출증)가 왔어요. ‘장비의 힘을 빌리자’는 생각으로 아기띠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무거운 거예요. 대부분 800g이 넘었죠. 1kg가 목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크거든요. 대안이 있을 거란 희망으로 폭풍 검색을 해서 해외 직구로 일본, 미국 아기띠까지 다 사 봤어요. 그나마 미국에서 가벼운 제품을 구했는데 너무 길었어요. 아기가 울면 안아줘야 하는데 아기띠를 둘둘 말다 보면 아기는 오열을 해요. ‘다들 정말 이 제품들을 만족하며 쓰는 걸까’란 의문이 들기 시작할 때쯤 남편이 ‘직접 만들어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어요.

―원래 창업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주변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해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의 근거가 되거든요. 제게 영향을 준 두 집단이 있어요. 첫 번째는 남편과 그의 친구들이에요. 제 주변에 좋은 기업에 취업하고, 고시에 붙은 친구는 많았지만 창업을 한 경우는 없었어요. 창업가인 남편과 친구들을 보며 ‘저런 삶도 있구나’를 알았죠.

두 번째는 아마추어 여자농구단이에요. 그곳에서 진취적인 여성들을 많이 만났어요. 엽서를 파는 서울대 졸업생, 안정적인 컨설팅 회사를 박차고 나온 창업가…. 활용하기 유리한 스펙을 버리고, 바닥에서부터 온몸으로 부딪혀가는 여성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어요. 회사에 다닐 때 일주일 휴가를 내고 그분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느냐’고 물었어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어요. 남에게 중요한 가치가 내게는 중요하지 않아질 때, 굉장히 쉽게 버릴 수 있다더군요.

2014년 여성 농구 동아리에서 활동한 임이랑 대표. 그는 이곳에서 “세상의 시각에선 작지만 자신의 기준에선 중요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진취적인 여성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임이랑 대표 제공

―디자인이나 제조의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는 막막했을 텐데요.

가장 먼저 원단을 들고 세탁소를 찾아갔어요. 제가 미싱을 할 줄 모르니, 디자인과 원단을 세탁소에 가져다주면 만들어 주겠거니 생각했죠. 막상 세탁소에 가니 ‘그런 건 샘플실에서 해 준다’고 하더군요. 그때 샘플실이 뭔지 처음 알았어요. 그렇게 그다음 스텝, 그다음 스텝을 밟아 나갔어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외국어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무지의 상태’는 뜻밖의 힘으로 작용합니다. 시중에는 마음에 드는 원단이 없어 아기띠 전용 원단을 자체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원단에는 ‘백화점 입점 제품에나 들어간다’는 실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실 보다 강도와 탄성이 50%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공장 사장님은 임 대표에게 “6만 원 정도 하는 제품에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보통 잘 모를 때는 시장의 기준을 따라가게 되지 않나요?

저는 업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관행에서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제품에 일반적으로 어떤 실을 쓰는지 몰랐어요. 공장 사장님이 무슨 실을 쓸 거냐고 묻기에 당연히 가장 튼튼한 실을 택했죠. 아기를 잘 지탱해야 하니까요. 원단도 마찬가지예요. 시장엔 아기띠용으로 개발된 원단이 없었어요. 신축성에 초점을 둔 원단을 직접 만들기로 한 거죠. 무엇보다 거울을 봤을 때 자괴감이 들지 않길 바랐어요. 예쁜 옷을 입어도 커다란 아기띠를 차면 완전 무장을 한 느낌이 들었어요. 끈은 주렁주렁 늘어져 있고요. 내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고, 자아를 추구할 수 있는 디자인이길 원했어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포기하고 싶진 않았나요.

마음을 가볍게 먹었어요. 공부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모든 걸 완벽하게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고 그 후 복습하는 것입니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창업의 전체 과정을 훑어보고 싶었어요. 가볍게 시작해보고, 될 것 같으면 좀 더 보강해서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일단 해보자’는 마인드가 제 관성이기도 해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거죠. 모든 과정에 부담을 느꼈다면 도중에 포기했을 거 같아요.

임이랑 대표는 스스로 까다로운 사람임을 인정한다. “고객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아요. 제가 유독 까다로운 소비자다 보니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고 싶어요. ‘떳떳하게 내 이름을 걸고 팔 수 있는 제품만을 판다’는 원칙이 있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임이랑 대표는 스스로 까다로운 사람임을 인정한다. “고객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아요. 제가 유독 까다로운 소비자다 보니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고 싶어요. ‘떳떳하게 내 이름을 걸고 팔 수 있는 제품만을 판다’는 원칙이 있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창업할 때부터 ‘왜 굳이 출근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임 대표는 2017년 창업 이후 7년 내내 재택근무 제도를 고수했습니다. 근무 시간 중 1시간은 돌봄에 사용하고 해당 시간을 이후 근무로 채울 수 있는 ‘근무 시간 배려제’도 도입했습니다. 보육 공백이 생긴 직원들이 자녀와 함께 사무실에 나올 수 있는 ‘자녀 동반 오피스데이’도 운영합니다. 보통 출산과 육아가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만 이 회사에선 ‘경력’입니다.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코니의 직원 65명 중 36명은 워킹맘입니다.
―창업 직후부터 100% 재택근무 제도를 선택하신 이유는 뭔가요?

전 당연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왜 굳이 출근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일 잘하는 사람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집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요. 세계에 정말 멋지고 유능한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채용하기 위해서라도 출근에 있어서 만큼은 유연해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이 가장 편한 곳에서 일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출퇴근 시간을 아껴서 내 삶의 더 만족스러운 부분에 투자할 수도 있잖아요. 반드시 모여서 해야 할 일만 모여서 하면 돼요.

―재택근무를 하면 직원들의 근태를 확인하기 어려우니 불안하지 않나요?

직원의 근무 태도는 오히려 재택근무에서 더 잘 드러나요. 재택근무를 하면 모든 업무가 온라인에서 이뤄지잖아요.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참여시키지 않으면서 똑똑하고 속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분들이 온라인에서는 정확하게 가려집니다. 불필요하게 모든 사람을 태그(tag)하지 않아야 하고요,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줘야 하죠. 자료를 첨부할 때 캡처 이미지를 붙여서 파일을 클릭할 필요가 없게 하거나, 질문하기 전에 궁금해할 법한 용어에 괄호를 치고 설명을 적어두는 식이죠.

―창업 6년 만인 지난해 12월 오프라인 사무실을 만드신 이유는 뭔가요.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다 보니 구성원들이 직접 제품을 보며 소통하고 협업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공유오피스를 사용해봤는데 생각보다 협소해서 지금이 오피스를 만들 적기라 생각했습니다.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고정 좌석, 자유 좌석, 쇼룸, 커피와 빵이 있는 키친, 제품을 보관하는 창고 등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이들은 사무실을 ‘코니 오리지널 하우스’라고 부른다)
‘엄마’ 역할을 하는데 사무실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명함에도 써 놨지만 저는 임이랑 대표이면서도 지용, 지헌의 엄마거든요.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기에 부담 없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유아차를 끌고 오는 분들을 위해 턱을 없앴고,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모든 모서리는 둥글게, 아이들이 바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개수대는 현관문 옆에 설치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일단 제가 행복하려고 해요.
임이랑 대표의 가족사진. 그는 아내이자 지용, 지헌 두 아들의 엄마다. 그는 ‘개인 임이랑’의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야 ‘대표 임이랑’의 역할도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코니바이에린 제공


대표는 마케터, 남편이자 사업총괄은 창업자 출신. 인플루언서 광고나 그럴듯한 프로모션으로 관심을 모은 브랜드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워킹맘인 한국의 이지애 아나운서, 일본에서 ‘패셔니스타’로 불렸던 모델 히로코 씨, 넷플릭스 ‘워킹맘 다이어리’에 출연했던 캐나다 배우 제설린 완림이 아기띠를 한 사진을 자발적으로 올리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창업 첫 해 3억 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317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일본, 미국, 호주, 캐나다 등 116개국에서 지금까지 팔린 아기띠는 120만 개에 달합니다.
―지난해 매출 300억 원을 달성했고, 수출국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요. 대표님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었나요?

사실 저는 매일 실패하고 있어요. 운영, 판촉, 마케팅 등 각종 분야에서 제가 세웠던 가설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는 숱한 실패와 매일 마주하죠. 그게 보이지 않는 것뿐이에요. 최근 고민은 국가별 ‘침투율’이었어요. 코니의 미션은 ‘부모로서의 삶을 쉽고 멋지게’인데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에서도 그 미션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싶어요. 올해 기조가 ‘Wider Reach, Closer Touch’거든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고, 친밀하게 다가간다는 거예요. 이 기조를 달성하기 위해선 신규 고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각 시장 전문가가 필요했고, 그들을 채용하는 과정이 도전적인 과제였습니다.

―2017년 창업해 어느덧 7년이 됐어요. 슬럼프가 찾아왔던 순간은 없나요?

제가 원하는 속도만큼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지 못할 때 다 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회사가 크는 속도만큼 내가 빨리 크지 못한 게 아닐까’라는 죄책감이죠. 그러다 보면 ‘인간 임이랑’의 삶까지 불만족스러워져요. 리더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줘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제가 행복하려고 해요. ‘대표 임이랑’이 아닌, ‘개인 임이랑’의 삶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보고, 이걸 제대로 들여다보는 ‘멘탈코칭’도 받고 있어요.
“스스로를 칭찬할 때는 소리 내 칭찬하라”는 멘탈코치의 조언을 실천에 옮겨본 임이랑 대표. 그는 평소 가장 잘 보일만 한 위치에 ‘나는 칭찬봇이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임이랑 대표 SNS 캡처
“스스로를 칭찬할 때는 소리 내 칭찬하라”는 멘탈코치의 조언을 실천에 옮겨본 임이랑 대표. 그는 평소 가장 잘 보일만 한 위치에 ‘나는 칭찬봇이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임이랑 대표 SNS 캡처

―앞으로 코니를 어떤 기업으로 키우고 싶으신가요?

쇼핑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내가 좋아서 하는 쇼핑’이 있고 ‘일처럼 하는 쇼핑’이 있어요. 육아용품을 사는 건 일처럼 하는 쇼핑에 가까워요. 아이의 성장에 맞춰서 새로운 제품을 살 때마다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헤매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그 과업은 빠르고 쉽게 해결될수록 좋겠죠. 코니의 제품군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서 코니에서 모든 용품을 살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어요. ‘코니라면 믿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드리는 게 목표에요.

그에게 ‘좋은 관성’을 물었다. 임 대표는 ‘과거의 나와 싸우는 관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걸 왜 예전과 똑같이 하지?’라는 문제의식이 늘 있어요.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잘해야 하거든요.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이 저의 좋은 관성입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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