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하모 씨는 신혼집으로 서울 용산구 오피스텔 월세를 구했다. 예비부부는 광화문에 위치한 대기업에 재직 중이다. 그동안 모은 돈을 밑천으로 서울 외곽이나 경기의 오래된 아파트 정도는 매입할 수 있었지만, 일단 출퇴근이 편한 곳에서 월세로 신혼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 대신 내년까지 청약을 노리면서 아파트값 추이를 살필 예정이다. 하 씨는 “앞으로 아파트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영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청약 당첨을 위한 예비자금으로 목돈을 아껴두고 아파트값이 좀 더 내릴지 지켜볼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 신혼집으로 아파트 전세 대신 오피스텔 월세를 구하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전셋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 고금리가 이어지자 굳이 대출을 받아 전세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아파트값 전망이 여전히 안갯속에 머물자 보증금으로 모은 돈을 향후 투자를 위한 목돈으로 남겨두려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 거주 중인 장모 씨(38)는 올해 초 결혼과 함께 월세 오피스텔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 대신 전세금으로 쓰려고 모아뒀던 2억 원은 아내의 주식투자 자금으로 돌렸다. 매달 월세로 150만 원 정도가 나가지만, 증권사를 다닌 경험이 있는 아내가 2억 원으로 충분히 월세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씨는 “요즘처럼 대출 금리가 높을 때 수억 원의 전세금을 집에 묶어두는 것보다는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달 결혼한 20대 직장인 유모 씨는 신혼집으로 왕십리에 월세 105만 원짜리 오피스텔을 구했다. 둘이 합쳐 현금 2억 원이 있었고, 부부가 잠실에 있는 대기업에 다녀 대출 여력이 있었지만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한 것. 유 씨 부부는 그 대신 2억 원으로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 유 씨는 “대출을 2억~3억 원 정도 더 받아야 출퇴근이 가능한 곳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며 “대출 이자가 사실상 월세와 비슷한 수준이라 그동안 모은 돈으로는 투자를 하고 월세로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피스텔 월세 거래는 증가세다. 이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의 오피스텔(전용 60㎡ 초과~85㎡ 이하) 월세 계약 건수는 842건으로 직전 1년(656건) 대비 28.3% 늘어났다. 오피스텔 전용 60~85㎡는 1인가구보다는 신혼부부가 살 만한 투룸이나 스리룸으로 구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요가 몰리면서 전용 60~85㎡ 오피스텔의 중위 월세 가격은 지난해 12월 119만9000원에서 4월 149만2000원으로 훌쩍 뛰었다.
오피스텔 월세에 수요가 쏠리는 데는 서울 등 수도권 전셋값 상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3일 조사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세 가격은 전주 대비 0.07% 상승했다. 52주 연속 오른 것이다. 여기에 전세사기 여파로 비(非)아파트 전세를 기피하는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최근 고금리에 전세 가격도 올라 아파트 전세금 마련 부담이 크다”며 “월세에 거주하면서 투자를 위해 현금을 아껴두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