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發 개미들의 비명… 반복되는 ‘K-바이오 악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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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FDA 신약승인 불발로 주가폭락
신라젠 등 K-바이오 신뢰 경고등
업계 “수준 낮은게 아니라 경험부족
FDA 절차 등 제도적 지원 필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 불발로 이틀 연속 하한가를 맞은 국내 바이오 업체 HLB의 주가가 간신히 추락을 멈췄다. 이번 사태가 국내 바이오주의 동반 하락으로 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았지만 단기간 주가가 폭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해졌다. 신라젠, 카나리아바이오 등 연이어 국내 신약 개발에 제동이 걸리면서 K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도에 경고등이 켜졌다.

● ‘신약 불발’에 시총 6조 증발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LB 주가가 전날 대비 3.19% 오른 4만85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앞서 HLB의 항암 신약 ‘리보세라닙’이 17일 미 FDA 승인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시작된 주가 급락세가 멈춘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4만∼5만 원대에 거래됐던 HLB의 주가는 항암 신약이 미 FDA를 통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급등했다. 올해 3월 26일엔 장중 12만9000원까지 오르며 연초(5만700원) 대비 154.4% 치솟았다. 하지만 미 FDA 승인이 불발되면서 HLB의 주가는 연초 수준으로 내려왔다.

단기간에 HLB 주가가 급등락해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 연이틀 하한가를 맞으면서 HLB의 시가총액은 6조 원가량 증발했다.

HLB 측은 미 FDA가 지적한 사안을 수정 보완해서 신약허가신청서(NDA)를 다시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주식 카페 등에서 HLB 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한 주주는 HLB 종목 게시판에 “30대 전업주부인데 신랑 모르게 집 담보대출 받아 몰빵했다”고 토로했고, 또 다른 주주는 “미 FDA 보고서 원문을 공개하라”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 되풀이되는 K바이오 잔혹사

국내 증시에서는 바이오주 급락 사태 때마다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는 잔혹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신라젠의 항암 바이러스 물질 ‘펙사벡’이 2019년 8월 미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의 임상 시험 중단 권고를 받았을 때도 신라젠 주가가 10분의 1 토막이 났다. 올해 초 카나리아바이오의 난소암 치료제 ‘오레고보맙’이 임상 시험 중단 권고를 받았을 때도 주가가 폭락했다.

바이오 업체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과도한 기대감을 불어넣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바이오주에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며 “회사의 실적이나 개발 인력, 자금 조달 능력 등을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LB그룹의 코스닥 상장사 8곳의 주가가 동반 하락하며 17일 이후 코스닥 제약지수는 12.0% 급락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 의약품 지수 하락률은 1.6%에 그쳐 사태가 바이오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바이오 업계는 이번 사태가 한국 바이오산업이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FDA의 허들을 넘어 본 경험이 현저히 부족했을 뿐이지 바이오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바이오 기업이 연구개발(R&D) 수준이 낮거나 경쟁력이 없는 게 아니다”라며 “글로벌 임상 시험 설계나 FDA 승인에 필요한 자료 등을 준비하는 경험이 부족할 뿐이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약승인 불발#주가폭락#k-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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