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한국 유수의 기업들도 현지화에 실패했던 곳입니다. 그만큼 필리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진출해야 합니다.”
정인수 동인기연 대표(69·사진)는 최근 서울 강서구 동인기연 서울사무소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필리핀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에 이같이 조언했다. 민주주의 국가이며 영어 소통이 가능한 필리핀은 미국 기업의 탈중국 현상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생산 기지로 부각되고 있다.
정 대표는 1996년 직원 250명이 있는 공장 하나로 필리핀에 진출했다. 지금은 1만 명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글로벌 아웃도어 가방 시장의 ‘슈퍼 공급자’가 됐다. 미국 그레고리, 캐나다 아크테릭스 등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동인기연에서 등산 가방을 공급받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20명이 작업하는 알루미늄 프레임 조립을 필리핀에서는 6명이 끝낼 정도로 필리핀 근로자의 손재주가 좋다”며 “필리핀 진출이 사업을 키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진출 초기에는 한국과 다른 필리핀 문화에 애를 먹었다. 정 대표는 “필리핀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한국처럼 공개 질책을 하면 반드시 앙갚음을 한다”며 “문제가 있더라도 조용히 불러 처리하는 게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월급을 한꺼번에 주면 결근자가 늘어 2주에 한 번씩 급여를 지급하는 원칙도 세웠다.
동인기연은 흥이 많은 필리핀 직원들을 위해 사내에서 남직원 농구 리그와 여직원 배구 리그 등을 연다.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전 직원 파티를 개최한다. 동인기연 유튜브에선 정 대표가 파티에서 영국 록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 등의 노래를 직접 부르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회사에 나와야 할 이유만 만들어주면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게 필리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중공업을 다니다가 1992년 동인기연을 창업했다. 그는 “지금의 봉제 산업은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하이테크 산업”이라며 “우리가 먼저 기술력을 갖추면 누구와도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인기연은 2022년 자체 아웃도어 브랜드인 ‘인수스’와 학생용 가방 브랜드 ‘디나이언트’ 등을 내놓으며 소비자 공략에도 직접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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