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1회 연속 동결하고 금리인하 전망도 후퇴하면서 시중은행 대출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한풀 꺾이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가계부채 관리에 고삐를 죄고 나서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오르는 분위기다. 고금리 기조는 하반기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커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족들의 빚 부담도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3.50%)을 유지하기로 했다. 기준금리 동결은 지난해 2월 이후 11회 연속 이어졌다.
당초 7~8월로 기대됐던 하반기 금리 인하 시점도 더 미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금리 인하 시점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긴축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것은 물가가 예상 수준으로 가는지를 보고 하겠다는 것이니 하반기에 무조건 (인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후퇴한 것은 국내 물가와 미국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9%를 기록, 한은의 안정 목표인 2%로 안착한다는 확신을 갖기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의 경제 지표 호조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정책금리 인하 예상 시점도 더욱 지연되고 있다.
시장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한은의 첫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7~8월로 지목했으나, 현재 대다수 전문가와 시장 참가자들은 10월쯤에나 가야 첫 금리 인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금리의 준거금리가 되는 은행채 금리는 이런 상황을 선반영해 최근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이달 17일 3.742%까지 떨어졌던 은행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이후 반등해 22일 3.773%로 올랐다. 같은 기간 은행채 1년물 금리도 3.611%에서 3.624%로 상승했다.
은행들도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선제적으로 가산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신한·하나·NH농협 등 3개 은행의 경우 4월 말 연 3.82%~5.83% 수준이던 주택담보대출 변동형 금리가 이달 현재(23일 기준) 연 4.28%~6.48%까지 올라, 3%대 금리는 자취를 감췄고 최고금리는 6%대를 넘어섰다.
최고금리가 연 8%에 육박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일부 금리가 낮아졌으나, 저금리 시기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시중은행 주담대는 연 2~3%대 금리도 흔했다. 단기간 금리가 급등하면서 이자부담이 많게는 2배 이상 늘어난 차주가 적지 않다.
현재 은행권 주담대 변동금리 중간 수준인 연 5.28% 금리(30년 만기, 원리금균등 조건)로 4억원을 빌린 차주의 경우, 한 달에 은행에 갚는 원리금이 222만원에 달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10월 이후로 밀려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당분간 은행 대출금리도 크게 인하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현재 수준의 금리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차주들의 빚 부담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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