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31주년’에 美출장 강행군
AI반도체 위기감-노조 리스크 속… 2주간 수행원 없이 美동서부 출장
정재계 미팅 등 일정 30여건 소화… 버라이즌 CEO와 새 AI폰 협력 논의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신(新)경영 선언’ 31주년을 맞은 시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출장에 나섰다. 2주간 미국 동서부를 훑으며 미팅과 현장점검 등 30여 건의 공식 일정을 수행원 없이 소화하는 강행군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원포인트’ 인사로 반도체(DS)부문장을 전격 교체하는 등 쇄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리스크 등 안팎의 위기감이 커지자 오너부터 발로 뛰며 위기 극복에 나서려는 것이다.
이 회장은 4일(현지 시간) 세계 1위 통신사업자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뒤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해내고 아무도 못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고 강조했다.
● 수행원 없이 분 단위 일정 강행군
6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중순까지 미국 동부 워싱턴부터 서부 실리콘밸리까지 돌며 인공지능(AI), 반도체, 통신 등 글로벌 기업 CEO 및 정·관계 인사를 만나는 등 30여 건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 회장이 북미 출장에 나선 것은 지난해 4∼5월 글로벌 제약사 및 엔비디아, 테슬라 등 CEO와 만난 지 1년여 만이다.
이 회장의 이번 출장은 주말을 포함해 하루 2건 이상 공식 일정이 예정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식 미팅을 준비하기 위한 내부 임원과의 사전 미팅 등을 고려하면 분 단위로 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삼성 호암상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로 이동해 오후 10시 30분 출국했다.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출국길에 올라 수행원 없이 홀로 일정을 소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 미팅과 관련된 사업부의 임원들은 일정에 맞춰 중간에 합류한 뒤 미팅이 끝나면 먼저 귀국하는 식이다.
이 회장은 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베스트베리 CEO와 만나 차세대 통신기술 및 세계 최초 AI 휴대전화 ‘갤럭시’ 신제품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2010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삼성전자 부사장과 스웨덴 에릭손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것을 계기로 10년 넘게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인연으로 2020년 삼성은 버라이즌에 한국 통신장비 단일 수출로는 역대 최대인 7조9000억 원 규모로 5세대(5G) 이동통신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회동에는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 사장,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 최경식 북미총괄 사장 등이 배석했다.
● 신경영 선언 31주년, 새 기회 모색
이번 출장은 ‘신경영 선언’ 31주년을 앞두고 삼성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 선대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장단과 임원들을 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일류로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 회장의 이번 출장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 기회를 모색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재계에선 삼성전자가 현재 각종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반도체에선 AI 열풍에 빠르게 성장 중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쳤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선 대만 TSMC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인텔이 거센 추격을 시작했다. 지난해 애플에 글로벌 출하량 1위 자리를 내준 스마트폰 사업은 올 1분기(1∼3월) AI 스마트폰으로 1위를 되찾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중저가·폴더블 폰에서 점유율을 늘리며 쫓아오고 있다. 사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창사 이래 처음 파업을 선언하며 7일 단체 연차를 내고 쟁의행위에 돌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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