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슈퍼카 시장에 이상 징후가 엿보인다. 올 들어 수요가 줄기 시작하더니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친 것이다. 고가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제도 시행과 더불어 범죄자들이 많이 탄다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지며 외면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폭스바겐 산하 고급차 브랜드인 벤틀리는 지난달 국내 시장에서 38대 판매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52% 급감한 수치다. 올해 1~5월 누적 판매는 지난해 동기 대비 65.8%나 줄어든 100대에 그쳤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롤스로이스도 지난달 전년 동월보다 47.1% 줄어든 18대 판매에 그치면서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올해 누적 기준으로도 32.4% 감소한 75대 판매에 불과했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상 최고 판매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중국을 빼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들 차량이 가장 많이 빨리는 나라가 한국이었다. 벤틀리 회장과 롤스로이스 최고경영자도 지난해 잇달아 한국을 찾는 등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유는 크게 3개로 파악된다. 우선 정부가 올해부터 고가 법인차에 대한 연두색 번호판 부착 제도를 시행하면서, 슈퍼카를 법인 명의로 사려는 수요가 사라졌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차량 판매가 많이 늘어나면서 ‘희소 효과’도 희석됐다. ‘돈이 있어도 아무나 탈 수 없는 차’에서 ‘돈만 있으면 누구나 탈 수 있는 차’로 바뀌면서 특별함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지난해 8월 마약에 취해 차량을 몰다 서울 압구정역 인근에서 행인을 쳐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남’,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협박을 일삼은 ‘벤틀리 MZ조폭’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고가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나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슈퍼카가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최근에는 범죄자나 졸부들이나 탄다는 식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법인차 규제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슈퍼카 시장이 더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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