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펑크’ 우려가 나오는 세수, 곧 나라가 걷는 세금의 상황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한 문장입니다.
굵직한 기업들이 지난해 결손으로 법인세를 내지 않게 되면서 올해도 세수가 예상보다 부족할 수 있다는 걱정이 큰 것인데요.
세수가 작아져도 세금 쓸 곳이 함께 줄어든다면 큰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급격한 고령화 속에 복지 분야 등에 대한 예산 지출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한국의 상황에서 세수 감소는 곧 재정 건전성 악화와 직결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온 보고서 한 편이 눈에 띄는데요.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강제적으로 지급하는 구조여서 학령인구가 줄어들어도 지속해서 늘어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한 보고서입니다.
‘인구축소사회에 적합한 초중고 교육 행정 및 재정 개편방안’이라는 이 341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국가적으로 봤을 때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이냐는 문제에서 작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데요.
주요한 내용을 간단하게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 “내국세 연동 교육교부금, 50년 뒤엔 1인당 8.9배 지출”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려면 교육교부금이 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1972년에 처음 도입된 교육교부금은 현재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의 일부로 조성돼 전국 시도교육청에 배분됩니다.
대학 교육을 의미하는 ‘고등교육’은 제외하고 초·중·고등학교까지의 초중등교육 경비로 사용되는 재원입니다.
해외에서는 보기 드문 재원 확보 방식으로, 안정적인 초중등교육 경비를 확보하려는 취지가 반영됐지만 비판도 많이 받고 있는데요.
저출산으로 학령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데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교육교부금 규모는 계속 커지는 구조라는 지적입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현재의 내국세 연동 방식이 유지되면 교육교부금이 2020년 55조9000억 원에서 20년 뒤에는 113조9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2050년에는 142조9000억 원, 2070년에는 210조8000억 원 등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반면 3∼17세 학령인구는 2020년 673만5000명에서 50년 뒤 285만1000명으로 반토막이 납니다.
이에 따라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2020년 830만 원에서 2070년 7390만 원으로 8.9배 뛸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 “득표율 높은 지역에 돈 더 써… 풍족한 교육재정, 정치 이해관계로 집행 가능성”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육교부금은 계속 늘어난다는 문제는 기존에도 꾸준히 계속 지적이 돼 왔는데요.
김학수 KDI 선임연구위원을 중심으로 고선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와 김태훈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가 함께 참여한 이번 연구에는 다소 도발적인 분석도 담겨 있습니다.
고선 교수의 시도교육청 목적사업비 배분 관련 분석이 대표적인데요.
요약하면, 전국 시도교육청이 재량권을 가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목적사업비가 배분되는데 이 목적사업비가 교육감의 선거 득표율이 높은 지역에서 더 많이 집행된다는 내용입니다.
분석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의 1인당 목적사업비 평균은 연간 193만7000원이었는데요. 시군구별로 보면 목적사업비 배분액이 득표율과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육감 득표 비율이 1%포인트 증가했을 때, 해당 시군구의 연간 1인당 목적사업비 배분액이 약 4만4739원 증가했다는 분석인데요. 1%포인트 득표 비율로 연간 목적사업비 평균의 약 2.3%가 차이 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고선 교수는 “내국세 연동 방식의 현행 교육재정 제도와 시도 교육감에게 재정책무 없이 상당한 재정집행 재량권이 주어지는 현행 교육행정 제도하에서 풍족한 교육재정을 시도 교육감이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비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풍족한 교육재정으로 유지하는 소규모 학교, 학생 위한 것 맞나?” 의문도 제기
전국 시도교육청에 과도하게 ‘풍족한 교육재정’이 주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점에서는 학교 규모에 따른 학생 1인당 교육비 차이 분석도 눈여겨 볼만한데요.
교육 분야에서도 일정한 크기 이상의 학교를 운영해야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는데 다른 분야와 달리 재정적인 압박이 크지 않은 교육에서는 비효율적인 학교 운영이 많은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초중고 학교급별로 2022년 전교생 규모에 따라 분석한 결과 전교생 수가 1~5명 구간에 속한 초등학교의 학생 1명당 교육비용은 2억6000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소규모 학교에서 높게 책정되는 학생 1명당 교육비용은 전교생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빠르게 축소되는데요.
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기준으로,
6~15명은 1명당 9450만 원
15~30명은 1명당 6330만 원
101~150명은 1명당 1780만 원
301~500명은 1명당 990만 원
1000명 초과는 1명당 620만 원
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이번 연구는 “학교급 교육비용의 규모의 경제는 전교생 수가 500명을 초과하는 학교에서 발생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전국 각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요.
이에 관한 질문에 김학수 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학교 통폐합과 같은 이슈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학생이 1, 2명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정말로 행복하고 활기찬 교육을 받는 것이 맞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연구는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지역의 학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직원을 배치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교육 공급자를 위한 교육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이번 연구는 일본이 최근 학교통합의 기준을 통학버스 등 교통편 이용 기준 통학 시간 1시간 이내로 개편한 것을 비롯한 해외의 학교 통합 사례를 일종의 대안으로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 “초중등 교육은 결코 무상이 아냐”
이번 연구에는 이 밖에도 초중고 공교육비의 수준과 국제 비교, 교육감 직선제를 비롯한 지배구조가 교육 성과에 미치는 영향 등도 담겨있는데요.
다양한 분석과 함께 이 연구는 “초중등 교육은 결코 무상이 아니고 방만하게 지출된 초중등 교육재정에 의해 늘어나는 국가 채무와 이자 부담은 학생들이 향후 경제활동을 하면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에 더해서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초중등교육에는 흔히 ‘무상교육’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지만 결국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는 ‘무상’일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쓰면서 초중등 교육에만 쓰라는 칸막이를 쳐놓은 예산이다 보니(최근에는 유보통합이나 고등교육 등에도 일부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와 딱히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국민들이 “여전히 한국에서는 초중등 교육이 중요하고 다른 재원을 줄여서라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예산 체계가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복지, 국토교통, 노동, 안전, 환경, 국방 등 다른 분야의 예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만 유독 특별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많다면 당연히 현재의 구조를 고쳐야겠지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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