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제가 만난 사람]‘바스프’ 마르셀루 루 아태 총괄사장
‘홍해 물류 대란’ 등 리스크 대비…수입보다 자국생산-소비 중시해
한국, ‘공급망-인재-무역’ 3박자…‘넷제로’ 아시아 허브로 도약 가능
고부가 나일론, 亞선 한국서만 생산
“석유화학 업계도 각국 정부 및 고객사들이 역내 공급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변화에 맞춰 새롭게 전략을 짜 나가야 합니다.”
지난달 29일 글로벌 1위 화학기업 독일 바스프의 울산 온산 공장에서 만난 마르셀루 루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43)은 “해외 수입보다 자국 생산, 자국 소비를 선호하는 게 최근의 트렌드”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최대 항로가 막힌 ‘홍해 물류 대란’을 예로 들며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기 위한 자국 공급망 중심주의가 더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석유화학에도 역내 공급망 우선주의 확산”
루 사장은 올해 바스프의 한국 진출 70주년을 기념해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세계은행(WB) 출신인 그는 2006년 바스프에 입사해 독일, 홍콩, 미국법인 등을 두루 거쳐 올해 아태 사장에 취임했다. 루 사장은 “바스프도 역내 공급망을 중시하는 새로운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며 “유럽 내 공급망은 이미 잘 갖춰 놓은 상태고 북남미, 중국, 인도, 동남아 등 다양한 지역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 사장은 한국의 강점 중 하나로 공급망을 꼽았다. 플라스틱 원료, 소재 생산부터 최종재에 해당하는 자동차 산업도 활발해 시너지가 큰 시장이라는 평가다. 그는 “한국은 공급망, 인재 및 기술, 자유무역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춰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 분야에서 아시아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루 사장은 “한국에서 많은 공장이 국제친환경인증(ISCC+)을 획득하며 이제 어느 고객사든 (넷제로) 수요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며 “한국 내 다양한 협력사와 직접 만나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기회가 활발하게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스프는 한국을 고부가, 넷제로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삼아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화학적 재활용 사업을 확대하고 식물 등에서 추출한 지속가능한 원료를 더 많은 사업에 도입하는 게 목표다.
루 사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넷제로 회의론에 대해서는 “속도를 늦추기보다 오히려 가속화할 때”라고 했다. 루 사장은 “갈수록 기업들에 요구하는 탄소감축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친환경 소재,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2, 3년 후에는 넷제로 관련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중국발 저가 공세로 석유화학 업계가 시름을 앓는 상황에서 루 사장은 생존을 위해 ‘상업성’ ‘지속가능성’ ‘장기 비전’ 등 3가지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비용에만 매몰되면 기술 혁신을 못 좇고, 기술 투자만 하면 회사 존립이 위협받는다”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균형을 잘 갖춘 기업만이 생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할 땐 과감한 결단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경쟁력 없는 사업을 계속 유지했다가는 지속가능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 “아시아 내 고부가 나일론 생산기지 한국뿐”
바스프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 내 바스프의 유일한 폴리아마이드66 생산기지인 온산 공장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를 통틀어서도 폴리아마이드66을 생산하는 곳은 바스프 온산 공장뿐이다.
‘나일론’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폴리아마이드는 섬유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자기기 등 산업 곳곳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플라스틱 소재다. 이 중에서도 고부가인 66 제품은 열내구성, 경도가 뛰어나 차량용 내장재나 타이어코드(보강재), 에어백 등 특수 소재로 쓰인다.
온산 공장은 45m 높이에 최상층인 8층부터 차례로 아래로 내려가며 원료 혼합과 증발, 중합 과정의 제조 라인이 운영되고 있었다. 가장 아래층에는 완성된 폴리아마이드66을 담은 1t 무게의 포대 900여 개가 쌓여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공급처가 정해진 일주일치 재고”라며 “석유화학 업계가 최근 어렵다지만 고부가 소재인 폴리아마이드66의 수요는 꾸준히 있다”고 설명했다.
바스프는 1982년 한국 내 첫 생산기지를 시작으로 현재 8개 공장과 4개의 연구개발(R&D)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루 사장은 “우리는 한국의 산업화 성장 역사를 함께했고 1998년 외환위기(IMF) 때는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을 정도”라며 “한국은 이제 바스프의 가장 선두에서 혁신을 이끄는 핵심 밸류체인(가치사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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