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세금일까, 부자 세금일까…상속세 논쟁[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9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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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사망한 사람의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을 뜻하죠.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창안한 이 세금은 18세기 말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선 1950년 상속세법이 제정되며 자리 잡았죠.

여기서 퀴즈. 스웨덴·캐나다·러시아·인도·중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상속세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럼 일본·한국·프랑스·영국·미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40%가 넘는 국가들입니다. 이렇게 국가 간 차이가 크다 보니, 어느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도 뜨거운데요. 마침 16일 대통령실이 상속세 전면 개편을 예고했죠. 오늘은 논란의 세금, 상속세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세금은 원래 논란거리이지만, 상속세는 특히 더 그렇다. 게티이미지
세금은 원래 논란거리이지만, 상속세는 특히 더 그렇다. 게티이미지


진보는 찬성, 보수는 반대?
여러분은 상속세에 대해 어떤 감정이신가요. 상속세를 높이는 것과 낮추는 것, 어느 쪽에 찬성하시나요.

어쩌면 이건 정치적 이념의 문제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16일 대통령실은 상속세 최고세율(과세표준 30억원 이상)을 50%에서 30% 내외로 낮추는 걸 검토한다고 밝혔는데요. 반대로 지난 총선에서 진보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자산 100억원 이상)을 90%로 높인다고 공약한 바 있죠. 아주 극명하게 입장이 엇갈리는 사안인 건데요.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 피상속인이 기업 최대주주이면 여기에 할증이 된다. 동아일보
직계비속에게 상속할 때 적용되는 각 나라별 상속세율. 한국은 10~50%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영국과 미국은 40% 정률 과세이다. OECD
직계비속에게 상속할 때 적용되는 각 나라별 상속세율. 한국은 10~50%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영국과 미국은 40% 정률 과세이다. OECD
다른 나라에서 벌이지는 상속세 논쟁 구도로 비슷해 보입니다.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앞둔 영국에선 보수당이 과감하게도 ‘상속세 단계적 폐지론’을 꺼냈었죠. 이에 반대하는 노동당과 지난 몇 달 동안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습니다(상속세 폐지는 보수당의 최종 총선 공약에선 결국 빠짐).

미국에선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상속세 공제 한도를 무려 2배로 올려버렸죠(500만 달러→1000만 달러, 이후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올해는 1361만 달러, 약 188억원이 됨). 상속세 부과 대상을 확 줄인 건데요. 늘어난 공제한도가 예정대로 2026년 1월 다시 원상 복귀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올해 11월 대선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바이든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2026년 1월부터 공제한도가 절반인 700만 달러 수준으로 뚝 떨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죠.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보수 정당은 높은 상속세에 반대, 진보 정당은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건데요. 참고로 높은 상속세율은 공산주의 이론가 카를 마르크스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엔 상속세가 없죠. 잠깐 동안(1940~49년)만 있다가 폐지됐고요.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은 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했던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습니다. OECD 국가 38개국 중 현재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14개국인데요. 이들 국가에서 뚜렷한 이념적 공통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라트비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오스트리아 체코 이스라엘 멕시코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상속세를 운영하는 전 세계 국가 수의 변화. 1980년대 들어 상속세를 없애는 국가가 늘면서 상속세 운영 국가가 줄어드는 추세다. 게슈비스터-숄-정치연구소
상속세를 운영하는 전 세계 국가 수의 변화. 1980년대 들어 상속세를 없애는 국가가 늘면서 상속세 운영 국가가 줄어드는 추세다. 게슈비스터-숄-정치연구소
생각해보면 세금 중 개인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거의 모든 나라에 다 있잖아요. 이런 세금을 없애려는 시도는 별로 없고요. 그런데 유독 상속세는 원래 있다가 없애버린 나라가 꽤 많다는 게 놀라운 점인데요.

이들 국가가 갑자기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에 무심해진 걸까요. 그래서 부자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걸까요. 그렇게 볼 건 아닙니다. 대체로 상속세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행정 효율에 있습니다. 모든 세금은 징수 비용이 발생하죠. 특히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데 행정력이 필요하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상속자가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 부동산이나 기업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기죠.

이에 비해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 차지하는 비중은 쥐꼬리 수준(OECD 평균 0.5%)입니다. 집행 비용에 비해 얻는 수익이 적다보니 상속세를 따로 두는 효용이 적습니다. 차라리 세금 종류를 줄이고, 소득세 같은 다른 세금을 조정하는 게 과세 행정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보는 거죠. 바로 이런 이유가 상속세 폐지로 이어졌고요. 캐나다·호주·스웨덴·뉴질랜드의 경우엔 상속세를 없애고 대신 양도소득세(자본이득세, 상속 재산을 파는 시점에 세금을 매김)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죽음에 대한 세금
상속세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세금 성격 상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과 관련돼 있기 때문인데요. 고대 로마 철학자 플리니우스는 약 2000년 전에 이렇게 주장했죠. “직계 상속인의 지분에 대한 세금은 유족의 슬픔을 가중시키는 부자연스러운 세금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던 스티븐 므누신도 상속세를 “죽음에 대한 세금”이라 불렀죠. 영국에선 상속세가 “가장 혐오하는 세금”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인도에선 총선을 앞두고 야당 의원이 부자 증세를 위해 미국처럼 상속세를 부활하자고 주장했다가 난리가 났는데요(인도는 1985년 상속세 폐지).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이런 말로 야당을 제압했습니다. “야당은 사람들이 자녀를 위해 남긴 재산을 빼앗을 계획입니다.” ‘상속세=사망세’라는 프레임은 꽤 강력하고 잘 통합니다.

FT 칼럼에선 상속세가 거부감을 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기를 갈망합니다. 불멸은 물리적 사물에서 나타납니다. 사진, 좋아하는 의자, 가족 집 또는 백만 달러의 신탁 기금일 수도 있죠. 물려받은 자산은 금전적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지닙니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징에 세금을 부과할 때 우리는 진정한 슬픔을 느낍니다.
늘어나는 상속세 과세인원.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나온 숫자다. 동아일보
늘어나는 상속세 과세인원.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나온 숫자다. 동아일보
물론 상속세는 기본적으로 부자들이 내는 세금입니다. 그게 바로 상속세가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이유-실제 대상자가 매우 적다- 때문이기도 하죠. 대부분 사람에겐 남의 일이다 보니 반발이 작을 수밖에요.

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지고 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자산을 축적하면서 상당히 부유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려줄 게 늘어난 거죠. 이에 비해 상속세 공제 기준은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국에선 이 기준(32.5만 파운드, 약 5억7000만원)이 16년째 유지 중이고요. 한국은 1999년부터 26년째 5억원이 일괄공제 한도이죠.

그 결과 상속세 부과 대상이 빠르게 늘어나는데요. 보통 1% 수준인 다른 나라와 달리, 이제 영국은 피상속인(죽은 사람) 기준으로 5.1%, 한국은 4.53%가 상속세를 냅니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 이들 국가에서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상위 4~5%를 중산층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의문입니다만.

이중과세 논란과 유산취득세
상속세가 왜 논란의 세금인지를 설명해 드렸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우리도 대세(?)에 맞춰 상속세를 확 깎아주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도를 업그레이드할 방법을 찾아봤으면 하는데요.

사실 상속세 비판 논리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중과세 논란입니다. 이미 재산을 형성할 때 소득세를 내고 합법적으로 모아둔 재산인데, 왜 여기에 세금을 또 매기냐. 뭐 이런 주장이죠.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누군가가 세후 소득으로 개인 운전기사에 월급을 줬다고 해서, 그 운전기사가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죠. 상속세 역시 기본적으로 상속을 받은 사람이 내는 세금이라는 점에선 엄밀히 따지면 이중과세는 아닙니다. 세금에 있어선 아버지와 아들을 각각 독립된 주체로 보니까요. 이런 관점에선 아버지의 유산은 아들에겐 불로소득일 뿐입니다.
상속세는 이중과세인가 아닌가. 이는 관점에 따라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게티이미지
상속세는 이중과세인가 아닌가. 이는 관점에 따라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게티이미지
그런데도 이중과세처럼 느껴지는 데는 ‘유산세’라는 부과방식 탓이 큰데요. 유산세 방식은 OECD 국가 중 한국 포함 4개국(영국, 미국, 덴마크까지)만 해당하죠. 이건 물려 주는 사람(죽은 사람) 재산 전체에 통으로 상속세를 매기는 겁니다. 예컨대 피상속인이 물려주는 재산이 과표 기준 30억원을 넘으면, 상속인이 몇 명이든 상관없이 최고세율(50%)이 되는 식이죠. 그중 1억원 물려받은 사람이나 10억원 물려받은 사람이나 세율은 똑같습니다.

일본 포함 다른 OECD 20개 국가는 상속세 계산법이 다릅니다. 죽은 사람이 얼마를 남겼느냐가 아니라, 상속을 받는 사람이 얼마 받았냐를 각각 따져서 상속세를 매기죠. 이걸 ‘유산취득세’ 방식이라고 부르는데요. 유산 총액이 30억원이라고 해도, 1억원 물려받은 상속인은 1억원을 기준으로, 10억원 상속인은 10억원을 기준으로 각각 상속세율이 결정되죠. 자연히 세율은 훨씬 낮아질 거고요.

유산세가 ‘죽음 사람 재산에 매기는 세금’이라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공짜로 물려받은 재산에 물리는 세금’인 셈입니다. 어느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이시나요. OECD는 이미 답을 내렸습니다. 2021년 보고서에서 “유산세보다는 상속인이 받는 부의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게(유산취득세) 더 기회균등 면에서 타당하다”고 지적했죠. 유산취득세는 납세자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과세한다는 원칙에도 더 부합합니다. 이중과세 논란에서도 훨씬 자유롭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나라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자. 이런 얘기가 꾸준히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정부 위원회가 이를 공식 제안했고요. 2022년엔 기획재정부가 관련 TF를 꾸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대통령실이 이 유산취득세를 들고 나왔죠.

물론 세금 제도를 74년 만에 완전히 뜯어고치는 일이 쉽지 않을 겁니다. 부자 감세다, 세수 감소는 어쩌냐, 위장 분할 상속으로 세금을 피하면 어쩌냐. 부작용 우려가 이미 나옵니다. 하지만 제도를 설계하기 나름 아닐까요. 논쟁적 세금,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이 이번 기회에 한번 뜨겁게 불붙기를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

세금 제도는 복잡합니다. 감정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슈이죠. 그래서 정작 깊은 논의에 들어가진 못한 채 각자 주장만 펼치다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엔 좀 다를 수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논란이 많은 세금, 상속세에 대해 정부가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상속세를 없애는 나라가 늘고 있는 건 사실이죠. 이념보다는 행정효율이 폐지의 주요 이유로 꼽힙니다.

-상속세는 죽음과 관련된 세금이란 면에서 거부감을 줍니다. 하지만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고, 부자만 내는 세금이라 조세저항은 적죠. 다만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화로 한국에선 갈수록 대상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중과세 논란을 줄이고, 기회균등이란 취지에 맞게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걸 이젠 논의할 때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세율과 공제한도 조정 수준이 아니라 제도 변화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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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딥다이브#상속세#세금#종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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