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시가총액(시총) 상위 기업들이 활발히 바뀌는 동안 국내 증시는 역동성을 잃은 채 지수가 오랜 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글로벌 산업구조가 대폭 변하고 있음에도 국내에선 혁신기업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며 증시가 ‘고인 물’이 됐다는 분석이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8일 기준 시총 상위 10대 기업 중 8곳은 5년 전인 2019년에도 10위 안에 속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인 2014년 이후 새로 증시에 상장해 10대 기업에 오른 건 ‘셀트리온’이 유일했다. 최근 5년 사이 새로 시총 10대 기업에 오른 상장 기업은 전무했다.
업종별로 분석해도 국내 주식 시장의 변화는 미미했다. 제조업 중심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는 10년 전에도 여전히 시총 5대 기업에 올라 있었다. 삼성전자는 1999년 처음으로 시총 1위에 오른 뒤 2000년 이후 24년째 대장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로벌 산업 트렌드가 눈부시게 급변한 최근 10∼20년 동안 국내 증시를 주도한 기업들은 대부분 손바뀜이 없었던 셈이다.
한국이 ‘혁신 기업의 무덤’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지 않으면서 국내 증시 전체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누르고 전 세계 시총 1위에 등극한 엔비디아(3조3350억 달러)는 한국 증시 전체 시총(1조9360억 달러)의 1.7배에 이를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이날 코스피가 전날보다 1.21% 오른 2,797.33으로 마감하며 2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이 올랐지만 여전히 수년째 이어진 박스권은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해외 증시는 혁신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2001년 이후 미국 증시에서 시총 1위에 등극한 기업은 엔비디아를 비롯해 애플, MS, 엑손모빌, 아마존, 제너럴일렉트릭(GE) 등 6개 기업이다.
유럽 증시도 시총 1위를 두고 명품기업 LVMH와 비만 신약으로 위세를 떨친 노보 노디스크,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1년부터 굳건히 1위를 지켰던 LVMH는 지난해 9월부터 노보 노디스크에 밀렸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혁신기업이 쏟아지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과도한 기업 규제로 신기술 혁신이 늦어지며 10년 전과 비교해 시총 상위 기업이 거의 똑같다”며 “기업 규제 등을 적극 해소하고 청년들에게 창업을 적극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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