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고물가 속 주목받는 공매
엔데믹 이후 공매 물품 증가… 고가의 술-옷 등 사치품 많아
상표권자가 감정해 ‘짝퉁’ 없고… 유찰 때마다 가격 내려가 저렴
낙찰 후 수령까지 과정 번거로워… 재판매보다 실사용 목적 구매를
고물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조금이라도 저렴한 구매법을 찾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로 떠오른 게 ‘세관 공매’다. 명품 가방이나 고급 위스키 등을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기자도 세관 공매에 참여해 입찰 방법과 과정을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관세청 홈페이지 내 ‘공매공고’ 게시판을 확인하니 인천공항세관에서 공매가 진행된다는 공지가 떠 있었다. 조니워커나 맥켈란 같은 유명 위스키가 여러 건 나온다는 공고였다. 1차 공매는 6월 4일부터로,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공매가 진행된다고 써 있었다. 공매에서는 일반 경매와 마찬가지로 유찰이 거듭되며 가격이 어느 정도 떨어지기를 기다리려야 이익을 볼 수 있다. 기자는 3차 공매가 진행되는 18일을 목표로 삼았다.
‘D-데이’인 18일 아침. 오전 6시 반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 중구 공항화물청사역에서 내렸다. 공매가 진행된다는 수출입통관청사 2층으로 올라갔다. 오전 9시 수출입물류과에서 ‘공매 입찰보증금 납부서’를 받아 개인정보와 입찰에 응하고자 하는 공매번호, 보증금 액수 등을 꼼꼼하게 적었다. 보증금은 입찰액의 10% 이상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흰 봉투 2개에 1만 원씩을 넣어 납부서와 함께 직원에게 제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는 위스키 ‘발렌타인 12년’(1L) 2병을 낙찰받았다. 가격은 각각 3만3130원과 3만3110원. 대형마트에서 해당 위스키를 8만 원대에 판매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중가의 절반 이하다. 5만 원대인 면세점 판매가와 비교해도 저렴하다.
● 엔데믹과 함께 늘어나는 공매 물품
공매(公賣)는 ‘공공기관 소유 물품 경매’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 중 세관 공매는 관세청이 진행한다. 주로 면세 한도 초과로 적발된 해외 여행객이 관세나 부가세를 내지 않아 압류된 물품이다. 여행자가 기한 내에 찾아가지 않은 분실물도 대상에 포함된다. 고가 주류나 의류 같은 사치품이 대표적인 공매 물품이지만 간혹 저가 의류나 생활용품 등이 대량으로 묶여 매물로 나오기도 한다. 무역회사가 통관 진행 중 부도가 발생해 반입을 포기하는 일도 있어서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세금 미납 등의 이유로 통관되지 못한 채 세관에서 보관하다 기한이 지난 체화(滯貨) 물품은 81만1045건으로 2022년(70만3288건)보다 15% 이상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던 2020년(21만3532건), 2021년(30만8020건)과 비교하면 4배에 가깝다. 특히 올해 1∼5월 체화 물품은 46만4074건으로 체화량이 전년보다 더 늘어나는 추세다. 각 세관이 물품 보관·검증 이후 공매로 내놓는 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공매로 나올 물품은 더욱 다양해지고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들어 네이버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명품 반값 구매법’으로 세관 공매 관련 게시글이 부쩍 늘고 있다. 다만 각 세관에 직접 가야 하고, 아직 일반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직까지는 경쟁률이 아주 높지는 않은 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전체 세관 공매 낙찰률은 지난해 기준 17% 수준이다.
● 위조품 모두 폐기해 짝퉁 걱정 없어
세관 공매는 일단 시중가 대비 반값에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찰로 공매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10%씩 최초 가격의 50%까지, 주세를 내야 하는 주류는 최초 가격의 60%까지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최초 공매 가격이 10만 원인 물품이라면 1회차 때 9만 원, 2회차 때 8만 원으로 최대 5만 원까지 내려가는 식이다. 기자가 참여한 공매는 3회차로 만약 다음 회차에 참여했다면 병당 2만 원대 후반에 위스키를 살 수도 있었다. 세관 직원에게 물어보니 “진짜 ‘전문가’들은 보통 가격이 많이 떨어진 5회차나 6회차 공매를 노린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부러운 공매 성공기는 올해 들어서도 여럿이다. 지난달엔 아웃렛에서도 120만 원대에 파는 몽클레어 아동 패딩이 25만 원대에 낙찰됐다. 공식 판매가 38만 원짜리 에르메스 넥타이도 22만 원대에 팔렸다. 3월엔 대형마트에서 32만 원대에 파는 ‘조니워커 블루 라벨’(750mL)이 23만 원에, 12만 원대인 ‘발렌타인 15년’(700mL)이 8만6000원에 낙찰됐다. 4월에도 시중가 1000만 원대인 샤넬 가방이 800만 원대에 팔렸다.
온라인 오픈마켓과 달리 짝퉁 걱정도 없다. 담당 세관 직원이 감정하거나 아예 상표권자에게 직접 의뢰해 진품으로 확인된 물건만 공매로 넘기기 때문이다. 위조품은 모두 폐기한다. 공매를 앞두고 직접 물품 상태를 살펴보고 싶다면 전날 공람 시간에 맞춰 체화 창고에 찾아가면 된다.
일부 물품은 관세청 전자통관시스템(유니패스·UNI-PASS)을 통해 온라인으로 전자입찰을 할 수 있다. 다만 품명과 규격이 획일적이라 굳이 물품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한 물품만 전자입찰로 나온다. 주류는 모두 일반입찰로만 진행해 세관에 꼭 방문해야 한다.
● 번거로운 구매 과정은 걸림돌
하지만 항상 반값에 살 수 있다는 기대는 금물이다. 공매 참여에 드는 시간과 비용까지 따져 봐야 한다. 우선 접근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자가 참여한 인천공항세관 주류 공매의 경우 평일 오전에 인천공항까지 직접 가야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낙찰에 성공한 후에는 세관 청사에서 수의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납부고지서를 받아야 한다. 이후 청사로부터 약 3km 떨어진 전용 은행에 찾아가 전액 현금 또는 수표로 거래 대금을 치른다. 그리고 청사에 다시 돌아와 영수증을 내면 물품 반출 승인서를 받을 수 있다.
물품은 청사로부터 7km 이상 떨어진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 있다. 이날 기자가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지하 1층 체화 창고 문을 두드려 발렌타인 위스키를 손에 쥔 시각은 낮 12시 30분. 공매가 끝나고 2시간이 지난 뒤였다.
공매 가격이 시중가보다 더 비싼 경우도 가끔 있다. 최초 공매 가격은 압류한 제품 영수증에 적힌 면세점 구매 가격을 기준으로 감정가를 매기고 여기에 관세와 부가세 10%를 더해 책정한다. 면세점마다 가격이 다른 데다 환율 차이로 인해 감정 가격이 비싸게 잡히기도 한다. 이 경우 여러 차례 유찰되더라도 여전히 가격이 높다. 변색이나 냄새 등의 이유로 낙찰받은 걸 반품할 수 없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자입찰로 물품을 낙찰받더라도 사전에 직접 창고에 가 물품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일부 사례만 보고 매매 차익을 노려 공매에 접근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설춘환 세종사이버대 자산관리학부 교수는 “주류 이외 물품들은 보관 중 변질 우려도 있으니 공람을 통해 상태를 직접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며 “매매 차익을 노리기보다는 조금 싸게 사서 직접 사용하려는 의도로 공매에 참여하는 걸 권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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