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기 한독 대표이사 인터뷰
피드백 안 하는 리더가 최악
고성과자가 일하고 싶은 회사 돼야
리더가 수다스러워야 소통 촉진
1954년 설립된 제약회사 ‘한독’의 70년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1964년 독일 제약사 ‘훽스트’의 투자를 받아 처음 합작회사가 된 이후로도 파트너사가 프랑스 제약사와의 잇단 인수합병(M&A)을 겪으면서 다국적 제약사 아벤티스로, 또 사노피로 바뀌어 왔다. 회사가 늘 국적을 뛰어넘는 수많은 인력의 재배치, 조직문화의 충돌과 융합 등 어지러운 구조조정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히 그 중심에는 HR(인적자원) 관리가 있었다.
격랑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1984년 한독 인사과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40년간 한독과 한독-사노피-아벤티스 인사 담당 임원을 지내고 국내 제약업계 사상 처음으로 인사 출신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백진기 대표는 현장에서 이 모든 풍파를 겪어낸 인물이다. 인사, 조직, 교육 및 노무 관리 한 우물만 판 자타 공인 ‘사람 전문가’. 잔잔한 회사에 다녔다면 겪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은 선진 인사 제도에 일찍 노출되는 기회로 작용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은 이제 막 호봉제를 논할 때부터 그는 이미 MBTI, 복리후생 카페테리아, 탤런트 매니지먼트,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 등 생소한 용어를 접하고 현장에 적용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 숱한 사람들이 들고 나간 회사에서 40년간 ‘인사쟁이’로 살아온 백 대표로부터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의 의미와 리더십에 대해 들어봤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6월 1호(394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좋은 리더의 핵심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지런히 피드백을 주는 리더가 책임감 있는 리더다. 반대로 피드백을 안 주는 리더가 최악의 리더다. 물론 지나치게 잦은 피드백은 잔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경쟁사와 치열하게 교전 중인 현장에서 리더와 팀원이 눈만 봐도 서로 통할 정도로 기대치를 일치시켜야 한다. 예전에 한독, 사노피, 아벤티스가 합병되던 때 내 직속 상사였던 영국인 인사 책임자가 있었다. 그는 직원마다 스프링노트 한 권씩 만들어 해당 직원의 목표와 업무 현황을 빼곡히 기록하곤 했다. 피드백의 핵심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인데 그는 내가 세운 목표 중 불필요해 보이는 것, 혹은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목표와 무관한 것들을 바로바로 짚어줬다. ”
―이런 피드백이 중요한 이유는?
“기록을 안 하면 목표나 성과를 부풀리기 쉽고, 지시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잊어버린다. 그런데 벤치마킹 포인트, 즉 기준점을 정할 때는 내 의견과 전문성을 존중해 주되 이렇게 기록해 두면 일의 경중과 우선순위가 분명해진다. 그가 스프링노트에 기록을 할 때 처음 3개월은 ‘나를 못 믿어서 일일이 적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관리자가 잘한 일은 실시간으로 인정해 주고 안 해도 될 일을 없애 주니 오히려 일할 맛이 나더라. 이 경험을 통해 피드백의 힘이 직원의 역량 향상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기업마다 평가 제도가 있는데 그게 곧 피드백 아닌가?
“평가와 피드백은 다르다.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잘해야 하는 이유는 평가를 받았을 때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서로 놀라지 않기 위해서’다. 수시로 소통을 하고 내가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목표와 관련해 어떤 부분이 미흡하고 수정이 필요할지가 ‘기억’이 아닌 ‘기록’에 남아 있으면 평가는 사후적인 확인 절차일 뿐이다. 만약 평가를 받은 당사자가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거나 의아해한다면 피드백이 원활하지 않다는 뜻이다. 피드백은 목표의 완수를 돕기 위한 장치인데 뒤늦게 목표 달성 여부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에 우리는 실시간 피드백을 제도화하기 위해 내가 감탄했던 영국인 상사 스타일의 ‘스프링노트’의 모듈을 회사 시스템에 탑재했다. 또한 리더 교육 때도 문서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핵심 인재 관리가 왜 중요한가?
“예전에는 전 사원이 일하고 싶은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재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좋은 회사다. 이제는 전 직원 퇴직률이 아니라 ‘탤런트 퇴직률’만 관리한다. 회사에는 고성과자와 중간성과자, 저성과자가 있는데 무임승차하는 저성과자는 중간값을 깎아 먹는다. 고성과자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하면 중간성과자들이 고성과자를 벤치마킹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결과적으로 전체의 70∼80%가 성과를 낸다. 그런데 저성과자도 적당히 다닐 만한 회사가 되고 똑같은 월급을 받는 무임승차자가 많아지면 어떨까? 중간성과자가 보너스 받는 걸 조금 포기하더라도 저성과자들을 따라가는 게 더 편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인재들에 대한 보상 패키지를 제대로 구축해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맞춤형으로 듣는 ‘테일러드 시스템(tailored system)’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려면 결국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하인리히의 법칙 또는 1:29:300 법칙처럼 인재가 떠나겠다고 사표를 던지기까지는 그전에 일어나는 말투의 변화를 비롯해 무수한 조짐들이 있다. 주로 이런 변화를 놓치고 제때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리더가 인재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최고의 복리후생이란 결국 이렇게 조짐이 있을 때마다 한 명 한 명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는 수다스러워야 한다. 조직의 가치와 비전을 정렬시키고 응집력을 키우려면 결국 1 대 다가 아니라 리더가 직접 1 대 1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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