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등서 빅테크 인사 만나
“시장 선점 하는게 가장 중요해”
AI사업 기회 찾고 네트워크 확대
경기 침체속 위기 돌파구 모색
재계 주요 그룹 총수들이 최근 잇달아 미국 출장길에 올라 인공지능(AI) 시장 주도권 선점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2주간 출장을 시작으로 구광모 ㈜LG 대표가 이달 1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2일 미국으로 향했다. 세계 최대 AI 빅테크와 반도체 업체들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AI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취지다.
하반기(7∼12월)에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자 위기 돌파구를 찾기 위해 총수가 직접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글로벌 정세에 대한 방향을 잡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23일 LG그룹은 구 대표가 17일(현지 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테네시와 실리콘밸리 등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20일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AI 반도체 설계업체 텐스토렌트의 짐 켈러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반도체 설계의 전설’로도 불리는 켈러 CEO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을 비롯해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시리즈’ 등을 설계한 인물이다. 2016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AI 반도체 팹리스(설계업체)를 세우고 비싼 엔비디아 칩을 대신할 ‘가성비 맞춤형 칩’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 기아 등의 투자를 받았고 LG도 투자를 검토하는 상황이다.
LG는 가전과 전장(자동차 부품), 통신 등 그룹의 주요 사업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AI 생태계 전반을 점검하기 위해 구 대표는 AI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업체인 피규어AI의 브렛 애드콕 CEO와도 회동했다. 그는 미 실리콘밸리에서 직원들에게 “지속 성장의 긴 레이스에서 이기기 위해 도전과 도약의 빅스텝을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22일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도착한 최 회장은 약 열흘간 미국에서 빅테크 주요 인사들과 만나 협력을 강화하고 AI 및 반도체 시장의 사업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다. 미국 출장은 4월 새너제이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CEO와 회동한 지 2개월 만이다.
SK그룹은 현재 배터리, 석유화학 등 주력 분야의 경영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AI를 통한 돌파구 마련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시장 전체로는 삼성전자에 이은 2위지만 AI 칩에 들어가는 고성능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선 선두를 달리고 있다. SK텔레콤은 통신 서비스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 ‘텔코’를 개발 중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2주간 미국 출장길에 올라 크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CEO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 등을 잇달아 만났다. 수행원 없이 미 동서부를 돌며 빅테크 CEO 및 정관계 인사 회동, 현지 사업장 점검 등 30여 건의 공식 미팅을 소화한 이 회장은 “삼성의 강점을 살려 삼성답게 미래를 개척하자”며 위기 돌파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총수들의 미국 출장길에는 AI와 반도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AI와 AI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반도체는 가전과 자동차, 정보기술(IT) 기기 등에 전방위적으로 적용돼 소비자의 편의성을 향상시키거나, 기업들의 신기술 개발 단계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켜주는 등 산업 전반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만큼 기술 표준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계 관계자는 “AI 분야에서는 시장 선점이 매우 중요하다. ‘늦으면 진다’는 위기감에 총수들이 영업사원이 된 듯 개별 네트워크까지 동원해서 글로벌 협력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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