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노인 1000만 명 시대, 주목받는 시니어주택
발목 높이에 비상벨 설치하고, 개인 트레이너-병원 셔틀 마련 등
고령자 특화 설계-서비스로 인기… 월 300만~500만 원 부담 크지만
수요 폭증해 입주 3년 걸리기도… 밝은 전망에 금융권에서도 관심
주택연금 가입자 입소 허가 등, 정부 차원에서 사업 활성화 노력
“중산층 대상 주택도 공급해야”
《노인들 줄 선 시니어주택
‘노인 1000만 시대’를 맞아 시니어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수억 원대 보증금에 월 이용료만 수백만 원인데 입주하려면 대기번호표까지 뽑아야 한다. 합리적 가격의 노인주택 공급 확대는 고령사회 한국이 풀어내야 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70대 김모 씨. 자녀들의 도움을 받는 대신 그간 모은 재산과 교원연금을 더해 경기 성남시의 전용면적 80m² 시니어주택에 부부가 함께 입주했다. 매일 아침 기상 후 탄천과 인근 공원을 산책한 뒤 단지 내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전문 영양사가 짠 스케줄대로 나오는 메뉴다. 오후에는 단지 내 수영장과 골프장을 찾아 운동을 한다. 2주에 한 번씩은 개인 건강트레이너 진단도 받는다. 단지 바로 옆에 대학병원이 있고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다. 매달 390만 원가량을 내야 하지만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27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5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95만4395명이다. ‘노인 1000만 명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시니어주택 수요가 늘고 있다. 시니어주택은 식사, 건강관리 등 기초적인 사항부터 취미, 레저 등 여가 서비스까지 모두 지원하는 노인 대상 주거시설을 말한다. 대형 건설사와 금융사들도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사업 기회가 커질 시니어주택에 주목하고 있다.
일상서 누리는 호텔식 서비스
시니어주택은 분양·임대형 노인복지주택과 양로시설 중 주거 공간을 갖춘 주거시설을 두루 가리킨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노인복지주택은 39곳(8840명), 양로시설은 180곳(9752명)으로 집계된다. 노인복지주택 10곳 중 7곳(69.2%)은 수도권에 있다.
최근 선보이는 시니어주택은 고령자 특화 설계가 적용된다. 현관에는 신발을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간이 의자가 설치된다. 낙상 사고 방지 차원에서 단차를 없애고 동작 감지기, 비상벨을 둬 비상 상황에 대응한다. 쓰러진 상태에서도 사람을 부를 수 있게 발목 높이에 비상벨을 설치하기도 한다. 샤워 부스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구조할 수 있도록 문을 당겨서 열 수 있게 한다.
서비스도 ‘고령자 맞춤형’이다.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고 인근 대형 병원과 연계 체계를 갖춰 응급 상황에 대비해둔 곳이 많다. 조·중·석식을 모두 먹을 수 있고 당뇨 등 개별 수요에 맞는 맞춤식·특별식도 제공받을 수 있다. 병원을 오가는 셔틀 버스 또는 발레파킹(대리주차) 서비스를 도입한 곳도 있다.
커뮤니티 시설은 △헬스케어실 △골프연습장 △수영장 △서예·공예실 △영화관 △헤어·뷰티 살롱 등을 아우른다. 시니어주택 중 하나인 ‘용인스프링카운티자이’ 김영수 시설장은 “입주자들이 봉사단체를 만들어 인근 병원에 봉사활동을 나갈 정도로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단지 특성에 맞게 서비스를 고급화하는 추세다. 입주자 대상으로 와인 라이브러리(보관소)를 두거나 계열사와 연계해 호텔 멤버십 1년 회원권 또는 무기명 골프 멤버십을 제공하기도 한다.
입주까지 3년 대기할 정도로 인기
가격은 대체로 높은 편이다. 임차료, 공동관리비, 의무식 등을 포함하면 매월 300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내년 3월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들어서는 ‘위례 심포니아’는 1인 기준 보증금 4억 원, 월 360만 원가량을 내야 입주할 수 있다. 부부 동반 입주 시 월 부담액은 390만 원이다. 건대입구역 인근의 하이엔드 시니어주택인 ‘더클래식500’은 전용 124㎡가 보증금 10억 원에 매달 480여만 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고급 주거 서비스에 대한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입주 대기 번호표를 끊고 자리가 나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수도권 쪽 공급은 더 달린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230채 규모 ‘더 시그넘 하우스’는 방 2개가 딸린 전용 59∼82㎡에 입주하려면 최장 3년을 대기해야 한다. 더클래식500이 2009년 준공 이후 2013년에야 입주 계약 100%를 채웠던 것에 비하면 최근 수요가 얼마나 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개발업계에서는 시니어주택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경력자를 수소문하고 있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높은 도심 지역에는 정작 시니어주택을 지을 땅이 없다”며 “공공이 보유한 연구원 자리나 종교단체에서 보유한 미개발용지를 찾아 시니어주택 개발이 가능한지 타진하기도 한다”고 했다.
도심화-대형화 추세도
시니어주택은 이제 근교가 아닌 도심 내부로도 파고들고 있다. 롯데건설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2025년 10월 입주를 목표로 810채 규모 ‘VL르웨스트’를 짓고 있다. 과거에는 경기 용인시 등 도심 외곽이 타깃이었다면 이제는 교통, 백화점 등 풍부한 인프라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조성되는 것이다.
대형화 추세도 나타난다.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에는 2550채 규모 시니어주택과 의료·업무·상업 문화시설 등이 포함된 복합주거 단지가 2029년 준공될 예정이다. 자녀 세대가 머물 수 있는 오피스텔 874실을 별도로 지어 세대 통합도 유도한다. 국내 처음으로 일반 투자자, 기관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수익을 배당하는 ‘헬스케어 리츠’ 방식이 도입됐다. 청라의료복합타운에는 HDC현대산업개발 등이 참여한 아산병원 컨소시엄에서 대규모 노인복지주택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사 등 금융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KB라이프생명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164채 규모 ‘평창카운티’를 열었다. 보험상품에 가입하면 입주 우선권을 주는 등 연계 서비스도 내놓을 계획이다. 은평, 광교, 강일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도 있다. 신한라이프는 올해 초 독립 법인을 만들고 하남 미사에 노인 요양시설 부지를 매입해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요양시설 4곳, 노인복지주택 2곳 등 향후 설립 계획을 세우고 현대건설과 함께 사업모델 개발, 공동투자 및 개발 등에 나섰다. 하나생명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개발 부지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연금 가입자도 입소 가능해져
정부에서도 시니어주택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5월부터는 주택연금 가입자도 시니어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해당 주택에 실제로 거주해야 하는데, 시니어주택 입주를 예외 사유로 인정해준 것. 기존 주택에 세입자를 구해 확보한 임대소득과 주택연금을 합해 시니어주택 월 생활비로 쓸 수 있게 됐다.
인구감소지역 89곳에 한해 분양형 시니어주택을 허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렇게 하면 공급자 측면에서는 분양 수익으로 건설 비용을 회수할 수 있고 입주자는 임차료 부담을 낮출 수 있다. 2015년부터 분양형 시니어주택이 금지되면서 중산층 대상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니어주택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다만 수도권 내 인구감소지역은 인천 강화·옹진군, 경기 가평·연천군뿐이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시니어주택은 의료시설 접근성이 좋아야 하는데 인구감소지역에만 분양형을 허용하는 것은 ‘미스매치’”라고 지적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입주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불법 분양을 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면서 분양형이 금지된 만큼 확실한 대비책이 우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니어주택 활성화를 위해 세제 개선 등 연계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싱가포르에서는 주택 규모를 줄여 시니어주택에 입주할 경우 양도세가 거의 없고 차액만큼 연금 상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기존 주택을 유동화해 시니어주택 입소 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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