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경쟁당국 “대한항공 통합 승인 조건, 美서부노선 줄여라”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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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LA 노선 등 일부 회수 검토
유나이티드 “경쟁력 문제” 합병 반대
업계 “속내는 대한항공 슬롯 노린것”

ⓒ뉴시스

미국 경쟁당국(DOJ)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승인 조건으로 대한항공에 일부 미국 서부 노선 슬롯 반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슬롯은 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에 운항할 수 있는 권리로 항공사의 자산으로 간주된다. 대한항공이 DOJ 조건을 받아들이면 한국과 미국 서부를 잇는 노선에서 대한항공 운항이 줄어들고 미국 항공사가 대신하게 된다. 한국 항공업계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미국 DOJ는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대한항공이 취항하고 있는 노선의 슬롯 일부를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되면 해당 노선의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22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통합으로 인해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노선 등에서 경쟁 제한이 우려된다고 밝힌 바 있다.

DOJ는 다른 해외 국가들이 합병 승인을 대가로 내건 조건들을 참조해 대한항공에 요구할 수위를 정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중국, 일본 경쟁 당국은 통합을 승인하면서 경쟁 제한성을 빌미로 대한항공이 가진 운수권 및 슬롯 반납, 아시아나항공 화물 매각 등을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이를 대부분 수용하고 경쟁 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통합 확정을 위해 미국의 승인만을 남겨준 상황에서 미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다양한 요구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천∼미국 노선은 대한항공의 알짜 노선 중 하나다. 미국이 그 노선의 슬롯을 요구하는 건 미국 내 다른 항공사들의 불만을 반영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줄곧 양사 합병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해 왔다. 대한항공은 유나이티드항공의 라이벌인 델타항공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통합이 되면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함께 커지기 때문에 유나이티드항공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유나이티드항공 등이 겉으로는 경쟁력 문제로 통합을 반대하지만 속내는 대한항공의 슬롯을 노리는 것으로 항공업계는 보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슬롯이 천문학적인 돈으로 거래된다. 슬롯 하나를 챙기는 건 엄청난 이득”이라며 “유나이티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예상과 달리 최근에 ‘아시아나항공 통합 반대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통합이 어찌되든 간에 슬롯을 얻는 실속을 선호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슬롯을 줄이면 한국 항공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항공사는 슬롯 하나를 얻으면 다양한 노선 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영국과 중국, 일본 경쟁 당국으로부터 합병 승인 대가로 운수권과 슬롯을 대거 양보했다. 중국에는 9개 노선에서 슬롯을 반납했고, 영국과 일본에는 각각 7개의 슬롯을 반납했다.

한 항공사 임원은 “유나이티드항공은 일본 전일본공수(ANA)와 같은 동맹체로 코드셰어 등의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얻어간 슬롯을 활용해 일본이 미국과의 노선을 강화할 경우 한국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외국 항공사들 사이에서는 많은 걸 얻어갈 수 있다 보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DOJ로부터 미국 국적 타 항공사로의 슬롯 양도 지침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미국#경쟁당국#대한항공#통합 승인 조건#미국 서부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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