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야 팔려” 소분 식품 호황… 조각사과 매출, 1년새 70% 껑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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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전국 가구 3분의 1 넘어
“비싸도 조금씩” 컵반찬도 인기
“대용량 제품 사서 같이 나누자”
중고거래앱서 공동구매도 활발

1일 서울 도봉구 쌍문시장의 족발집 주인 임모 씨는 "(많은 양이 필요 없는) 1~2인 가구 위주로 요청이 많아 소분 족발을 팔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일 서울 도봉구 쌍문시장의 족발집 주인 임모 씨는 "(많은 양이 필요 없는) 1~2인 가구 위주로 요청이 많아 소분 족발을 팔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후암시장의 한 과일가게. 자두를 1만 원 20개, 그리고 5000원에 10개를 담아 팔고 있었다. 가게를 기웃대던 박모 씨(31)는 자두 10개와 참외 1개를 고른 뒤 7000원을 냈다. 박 씨는 “혼자 살다 보니 많이 사 봤자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며 “개당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조금만 사서 신선한 상태로 먹는 게 오히려 가성비가 좋다”고 했다. 과일가게 주인은 “자두는 보통 만 원 단위, 사과나 참외는 상자째 팔았는데 젊은 사람이나 어르신들 모두 부담스러워하길래 조금씩 나누거나 낱개로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조각 사과와 컵반찬 인기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 가구는 약 750만2000가구로 전국 가구 수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평균 가구원 수는 2.2명까지 낮아졌다. 평균적으로 결혼하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1인 청년 가구가 증가한 데다 고령화로 인해 1인 노인 가구도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전통시장에서까지 소분 제품이 등장한 배경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과일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소량만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도 소분 제품 판매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후 7시경 경기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1.8kg짜리 양파가 진열된 매대 건너편에 2개입 양파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날 2개입 양파를 집어 든 직장인 이모 씨(30)는 “1.8kg짜리 제품을 사봤자 다 못 먹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상하기 쉬운 채소나 과일은 조금씩 사서 그때그때 먹는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잠실점. 롯데마트는 올해부터 조각 수박, 조각 멜론 등 소용량 과일 제품을 전년 대비 2배 늘려서 판매 중이다. 롯데마트 제공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잠실점. 롯데마트는 올해부터 조각 수박, 조각 멜론 등 소용량 과일 제품을 전년 대비 2배 늘려서 판매 중이다. 롯데마트 제공
롯데마트는 지난해 150g 소용량으로 선보인 조각 사과 매출이 전년 대비 70% 커졌다. 이에 올해는 소용량 과일 상품 수를 전년 대비 두 배 늘렸다. 미니·조각 수박은 5월 1일∼6월 11일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5배 이상 성장했다.

1∼2인 가구가 많이 찾는 유통 채널인 편의점은 이 같은 소비 트렌드 변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해 왔다. GS25는 베이컨포테이토, 타르타르치킨 등의 반찬을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컵에 담아 2150원에 판매하고 있다. 가구원 수가 적으면 집 근처 반찬가게나 밀키트 전문점을 찾아 먹고 싶은 음식만 소량으로 구매한다는 점에 착안해 내놓은 제품이다. GS25에 따르면 반찬류를 찾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올해 상반기(1∼6월) 편의점 반찬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9% 성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분 식품의 인기는 1∼2인 가구가 늘어난 게 가장 결정적 원인”이라며 “많이 사서 쟁여 두고 먹던 과거의 풍조와 달리 식품의 신선도를 신경 쓰는 추세가 더해진 것도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 모바일 앱서 ‘소분 파트너’ 찾는다

소분 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는 동시에 대용량 식품을 산 뒤 나눠 갖는 ‘공동 구매’도 더 활발해지고 있다.

경기 고양시의 주부 오모 씨(65)는 최근 코스트코에서 안심 3kg을 산 뒤 친한 주부 2명과 함께 셋으로 나눴다. 오 씨는 “아들이 얼마 전 독립해 남편과 둘밖에 없어 대용량은 부담스럽다”며 “물가가 올라 장 보는 비용도 아낄 겸 친한 이웃끼리 식료품 공동 구매를 종종 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식품을 함께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중고거래 온라인 플랫폼 ‘당근’에서는 “대용량 제품을 사서 같이 나누자”란 게시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령 600g에 3만9000원짜리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한 명당 150g 단위로 나눠 9900원에 같이 구매하자는 제안 글을 올리는 식이다. 그러면 제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작성자에게 말을 걸어 공구에 참여한다. 식품은 중고 거래가 이뤄지기 어려운 품목이지만 공동 구매라는 트렌드를 등에 업고 플랫폼 확장성이 생긴 것이다.

홈쇼핑 채널 역시 제한된 방송 시간에 대용량 제품을 싸게 판매한다는 ‘업계 공식’을 깨고 소분 트렌드에 합류하고 있다. GS샵은 지난해 10월 ‘아디다스 드로즈’를 시작으로 제품 판매 때 소분 구성 선택지를 뒀다. 8종 세트와 4종 세트를 함께 판매한 ‘아디다스 남성 드로즈’ 매출은 8종 세트만 팔았던 직전 방송 대비 17% 증가했다. 올해 2월 속옷 브랜드 ‘플레이텍스’ 방송에서도 15종 패키지와 9종 패키지를 함께 선보이자 15종 패키지만 팔았던 이전 방송 대비 판매량이 63% 늘었다.

1인 가구 증가와 고물가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분 경제 또한 앞으로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환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 고물가 등 변화하는 사회상이 유통가에 자연스레 반영된 것”이라며 “최종 소비자들이 원하는 단위로 나누는 ‘소분’이라는 행위를 통해 중간 유통 상인들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소분 식품#호황#조각사과#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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