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용적률 인센티브 받고선… 공공 개방 약속은 나몰라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5일 03시 00분


재건축 단지 ‘개방 약속’ 잇단 불이행
동 간 거리 좁히고 가구수 확대 혜택… 입주땐 각종 시설 개방 약속 안지켜
공공개방 안하려고 철제 울타리도
“강제 수단 없어… 방안 강구해야”

지난해 8월 준공한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는 재건축 당시 건물 높이의 80%로 제한돼 있는 동 간 거리를 52.8%까지 좁히고, 그만큼 가구 수를 늘려 수익성을 키울 수 있도록 혜택을 받았다. 대신 독서실과 지역창업센터 등 커뮤니티 시설을 공공에 개방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단지는 최근까지도 개방 여부를 놓고 서초구와 신경전을 벌였다. 입주자들 사이에서 일반 대중이 아니라 서초구민 등 지역 주민에게만 개방하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단지는 서초구가 지난달 13일 소유권 이전고시를 취소해 각종 담보대출 등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커뮤니티 시설을 원래대로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단지 일부 시설을 공공에 개방하는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받은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입주 뒤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례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개방을 직접적으로 강제할 수단도 마땅히 없어 압구정과 여의도 등 한강변 재건축이 진행되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1320채 규모 A아파트. 2019년 입주한 이 아파트 주변에는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어 가로 650m, 세로 400m 블록 전체가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웠다. 바로 인근에 있는 2000여 채 규모 B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물품을 가득 실은 탑차도 보안 직원의 확인을 거친 뒤에야 철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일반 보행자는 카드키를 태그해야 출입이 가능하다.

이 두 단지는 일반인도 통행할 수 있는 개방형 단지로 조성하기로 계획을 짜서 인허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울타리를 둘러 아파트 단지 주민들만 통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주민 고모 씨(71)는 “단지를 일반에 개방한 뒤 강도 사건이 일어나 울타리를 설치한 것으로 안다”며 “외부인들이 안 오니 안전 면에서는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울타리는 허가를 받지 않은 일종의 불법 건축물이지만 철거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높이가 2m 이하여서 법규상 불법 건축물로 분류되지 않아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도 아니다. A아파트의 경우 공동주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강남구가 경찰에 고발했지만 벌금 100만 원 처분에 그쳤다. 울타리도 철거하지 않았다. 인근의 또 다른 C아파트는 고발 대상인 조합이 해산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B아파트는 최근 경찰에 고발됐다. 공공보행통로 설치 등을 위반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상태다.

래미안 원베일리처럼 용적률 등 각종 인센티브를 받아 수익성을 높였으면서도 공공 개방 계획을 지키지 않는 사례는 과거부터 있었다. 2016년 준공한 서초구 반포동 D아파트의 경우 공공 개방하기로 했던 스카이라운지를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가 입주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해당 시설을 개방했다. 이 아파트는 공공 개방의 대가로 당시 규정보다 3층 높인 38층까지 건물을 올렸고, 동 간 거리도 법정 기준의 64%까지 좁힐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받은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공공 개방 약속이 지켜지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 개방으로 얻는 각종 인센티브의 수혜자는 조합원이다. 반면 공공 개방에 따라 발생하는 불편은 그 같은 계획에 동의한 적이 없는 세입자나 일반분양 입주자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공 개방 시설은 땅에 대한 사용수익권을 확보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를 위반해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취약점”이라며 “정부가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건축#인센티브#공공 개방#용적률 인센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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