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성장세 큰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
출산율 감소로 영유아 백신 시장 축소… 제약사, 반려동물 치료제 개발에 눈길
2027년 2조2000억 원 시장 성장 전망… 인수공통감염병 예방 백신 개발 속도
아토피 등 동물용 피부병 치료제부터… 항암제-인지기능장애 약물까지 관심
《반려동물 백신-항암제 시장 급성장
“심장사상충 백신은 한 달에 한 번, 종합 백신은 1년에 한 번 맞고 있어요.”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반려묘에 대한 백신 접종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늘어나자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이 커지고 있다.
“심장사상충 백신은 한 달에 한 번이고요. 종합 백신, 광견병, 백혈병, 복막염 백신은 1년에 한 번 정도 맞고 있어요.”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A 씨(35)는 반려묘를 키운 지 3년째인 ‘중견 집사’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길을 헤매던 유기묘를 입양한 터라 초반부터 반려묘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다. 고양이나 강아지는 사람보다 항체가 잘 생기지 않고 생겨도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주 백신을 맞아야 한다. 심장사상충 약은 1만 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지만, 반려동물 백신은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번에 7만∼8만 원 정도로 꽤 비싸다.》
● 출산율 급락하자 반려동물 시장 개화
최근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크게 줄어들며 영유아 시장에 쏟아졌던 자본이 반려동물 시장으로 많이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을 읽은 여러 제약사는 미래 성장성을 고려해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영유아 수가 줄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백신 개발 기업이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어린이 예방접종률 현황에 따르면 접종률은 96∼97% 정도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 접종자 수는 2016년생의 경우 36만4441명에서 2021년생 25만4997명으로 30%가량 줄었다.
반면 반려동물 수는 점점 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2019∼2020년 미국 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 수는 8490만 가구였으나 2021∼2022년에는 9050만 가구로 약 7%가 늘었다. 이는 미국 전체 가구 수의 70%에 해당한다.
유럽 역시 반려견이 8750만 마리(2019년)에서 9000만 마리(2020년)로 증가했다.
국내 백신 개발 기업의 대표는 “출생아 수가 60만 명을 웃돌던 시절에는 ‘레드 오션’이더라도 영유아 필수 백신을 개발하려는 기업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반려동물 백신 개발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많아졌다”고 했다.
실제 마켓앤드마켓은 반려동물 백신 시장이 매년 8.5% 성장해 2027년에는 15억9100만 달러(약 2조2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바이러스·DNA 이용하는 3세대 백신 활발
최근에는 바이러스의 활성을 제거하거나 독성을 약화시킨 불활화 백신, 약독화 백신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반려동물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기존 백신은 효과는 뛰어나지만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새로운 바이러스 등장 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문제는 기후 변화로 동물들의 생활 방식과 거주지 등 생태계가 변하면서 신종 바이러스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엔 동물과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많다. 신종 감염병의 60%는 인수공통감염병이기 때문에 신종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빠른 백신 개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는 개발 방식은 바이러스벡터 백신, DNA 백신 등이다. 바이러스벡터 백신은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유전자의 일부를 재조합한 뒤 운반체에 실어 체내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운반체로는 독성이 없는 안전한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이 바이러스벡터 방식이다. 이 방식은 감염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만 알면 쉽게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종 바이러스 출현에도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동물약품은 바이러스벡터 방식으로 반려동물의 백신을 여럿 개발했다. 반려견의 홍역을 예방하는 ‘리콤비텍 CDV’, 반려묘의 백혈병 바이러스 및 광견병 백신인 ‘퓨어백스’ 등이다. 회사는 이 백신이 보다 안전하고 접종 후 빠른 시일 내에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비교적 오랜 시간 면역 효과가 지속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국내 제약업계 전문가는 “반려동물은 워낙 자주 백신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맞으면 오래가고 효과가 빠른 백신에 대한 수요가 큰 편”이라며 “인수공통감염병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 사람에게선 실패 치료제가 동물에게선 ‘히어로’
반려동물 치료제 역시 습진, 아토피, 당뇨병에서 암, 인지기능장애 등 중증 질환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기존에 사람을 대상으로 치료제를 개발하던 제약사들이 동물용 치료제까지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정호 안전성평가연구소 동물모델연구그룹 그룹장은 “동물에게서는 충분한 효과를 보였던 약물인데 사람에게서는 효능이 잘 나타나지 않아 상업화에 실패한 물질들이 있다”며 “제약사 입장에서는 동물용 치료제로 개발하기 매우 좋은 물질”이라고 했다.
특히 종양은 반려동물에게서도 사망 원인 1위로 꼽히기 때문에 수요가 큰 편이다. 반려동물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암종은 피부암이다. 고양이의 35%, 10세 이상의 개는 55.7%가 피부암에 의해 사망한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동물용 항암제는 5개뿐이다.
국내에서는 바이오벤처인 박셀바이오와 HLB가 반려견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박셀바이오는 유선암(악성 유선종양·사람으로 치면 유방암) 치료제 ‘박스루킨-15’를 개발해 지난해 10월 농림축산검역본부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동물용 치료제는 한 번의 시험만으로도 품목허가가 가능하다. 회사는 현재 림프종에 대해서도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HLB는 사람용 간암 치료제로 개발 중인 ‘리보세라닙’을 동물용 항암제로도 개발하고 있다. 유선암을 표적으로 임상을 진행 중이지만 향후 대상 질환을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인 지엔티파마는 2021년 반려견 인지기능장애증후군(CCDS) 치료제 ‘제다큐어’를 출시했다. 회사에 따르면 반려견의 경우 11∼12세에서 약 28%, 15∼16세에는 68%가 인지기능장애를 겪게 된다. 제다큐어의 공급을 맡고 있는 유한양행은 제다큐어를 포함한 동물용 의약품 및 사료의 지난해 매출이 약 400억 원이라고 밝혔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키우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고가지만 반드시 필요한 프리미엄 의약품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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