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길이 놓고 MZ 간 논쟁
Z세대의 긴 양말에 힘 싣는 패션계
SS 컬렉션 수놓은 ‘니 삭스’ 패션
비주류 아이템이 럭셔리 흔들기도
패션계에 때아닌 양말 논쟁이 일고 있다. 트렌드 지표로 각광받는 글로벌 쇼트폼 미디어 플랫폼 틱톡에서 한때 ‘MZ’라는 명칭으로 통합되던 밀레니얼과 Z세대가 양말 길이를 두고 미학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Z세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던 발목 양말을 구시대적 유물이라 명명하며 젊고 세련돼 보이기 위해서는 양말을 발목 위로 끌어올려 신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양말에 대한 세대 간 논쟁에 불을 지핀 건 틱토커 피비 피티시(@Phoebe…Fitish)다. 그가 지난해 10월 게재한 ‘Difference between a millennial vs Gen Z’ 영상은 조회 수 361만4000회 이상을 기록하며 소셜미디어에서 무서운 속도로 확산됐다.
Z세대 틱토커들은 “공공장소에서 발목 양말을 신는 건 거슬리는 일이다”, “아버지 외에 이런 양말을 신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최근 발목 아래로 오는 양말은 모두 버렸다”와 같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밀레니얼의 방식을 옛것이라 치부하고 나섰다. 캐나다 방송매체 CBC는 “과거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에 이어 발목 양말 역시 공식적으로 유행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말 예쁘게 신는 법’, ‘긴 양말 스타일링법’ 같은 영상은 인기를 끌며 긴 양말 유행을 부추기고 있다.
패션계도 긴 양말에 힘을 싣고 있다.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이 이를 방증한다. 양말에 운동화뿐만 아니라 한때 금기시됐던 샌들과 하이힐의 조화마저 새삼스럽지 않아졌다. 오히려 다채로운 소재와 컬러들로 옷보다 양말이 더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였다.
샤넬은 니 삭스와의 로맨틱한 조합을 택했다. 하우스를 상징하는 클래식한 트위드 미니드레스에 살결이 은은하게 비치는 시스루 삭스를 당겨 신고 메리제인 슈즈를 매치하는 능수능란함을 보였다. 이에 질세라 질 샌더는 하늘하늘한 소재의 화이트 블라우스와 미디엄 쇼츠에 니 삭스와 T자 스트랩 샌들을 한 벌로 어우러지도록 연출해 우아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미니멀리즘을 전면에 내세운 겐조는 간결한 미니 드레스와 샌들에 화이트 니 삭스를 더해 어딘지 모를 허전함을 채웠다. MSGM과 빅토리아 베컴 역시 차분한 그레이 색상 니 삭스로 슈즈의 톡 튀는 컬러를 묵묵히 받쳐줬다. 이 외에도 화려한 격자무늬 양말에 휘감은 스트랩 샌들로 눈을 즐겁게 한 드리스 반 노튼과 리본 장식 니 삭스로 걸리시 무드를 이끈 메종 마르지엘라도 유행에 동참했다.
남성복의 움직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흰 양말과 샌들, 로퍼의 조합이 두드러졌다. 루이비통은 두툼하게 주름을 잡은 흰 양말에 T자 스트랩 로퍼를 매치해 재미를 부여했고, 로크는 발등을 감싼 레그 워머로 베이식한 룩을 단숨에 특별하게 만들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또 어떤가. 양말과 로퍼 컬러를 통일해 언뜻 보면 부츠를 신은 것 같은 착시마저 들게 했다. 이번 시즌 트렌드로 떠오른 파격적인 쇼츠에 종아리까지 오는 니 삭스와 슬라이드로 노출의 강도를 영민하게 조절한 디올 맨도 눈길을 끌었다.
발목 양말을 폄하하며 나타난 목이 긴 양말의 유행은 느닷없지만 Z세대의 독특한 소비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엉뚱함과 유머러스함으로 점철된 Z세대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주목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때때로 소셜미디어에서 주목받은 비주류 아이템이 럭셔리 시장의 정의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몇 년째 양말과 샌들의 조합을 꾸준히 밀고 있는 헤일리 비버와 지지 하디드 같은 셀럽들이 건재하는 한 양말을 당겨 신는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이러다 발가락 양말까지 유행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메종 마르지엘라가 일본의 전통 양말 다비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발가락 모양 신발이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유행한 걸 보면 발가락 양말의 유행도 머지않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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