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서울 쏠림… 지방은 미분양 쌓이고 건설사 줄도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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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미분양 80%가 지방에 몰려
준공후 미분양도 10개월째 증가
올해 부도 건설사 20곳, 작년의 2배
6개월 넘게 입주지연 피해 속출

이달 15일 충남 아산시 방축동에 있는 민간임대 아파트 ‘아산아르니퍼스트’ 현장 펜스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아산=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달 15일 충남 아산시 방축동에 있는 민간임대 아파트 ‘아산아르니퍼스트’ 현장 펜스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아산=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15일 충남 아산시 방축동의 498채 규모 아산아르니퍼스트 민간임대 아파트 공사 현장. 올해 1월부터 공사가 중단돼 펜스 너머로 덩그러니 서 있는 타워크레인 1대와 비바람에 녹슨 철근 더미만 보였다. 이 현장의 시공사인 새천년종합건설(국내 도급 순위 105위)은 올해 2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현장 펜스 곳곳에 걸린 하청업체 명의 플래카드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협력업체인 광주 3위 철근콘크리트업체 A사는 못 받은 공사비 43억 원에 대한 유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공사설비를 현장에서 빼지 않고 있다. 설비 임대비용만 두 달에 1억 원씩이다. A사 대표는 8억 원짜리 본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직원 월급을 주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이 현장에 협력업체 20여 곳이 공사비가 물려 있다”고 했다. 다른 협력업체인 충남 10위권 철근콘크리트업체 B사 대표는 “이 현장에서 직원 월급 5개월 치를 받지 못해 다른 현장에서 받은 돈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서울 부동산 투자 쏠림 현상이 강해지는 가운데 지방 건설업 생태계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집값 대세 상승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지방에서는 중견 건설사들이 무너지며 협력업체들까지도 생존의 기로에 선 것이다. 특히 전국 미분양 물량의 80%가 지방에 집중되면서 주변 상권마저 초토화되고 있다.


18일 국토교통부 건설공사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들어 부도를 맞은 건설사는 20곳(종합 7곳, 전문 13곳)으로 전년 동기(9곳)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전체 부도 업체(21곳) 수준이다.

건설사 부도로 지역개발공사가 짓는 공공아파트에서도 6개월 넘게 입주가 지연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159채 규모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남양휴튼’은 입주 예정 시기가 올해 2월에서 5월로 연기됐다가 8월로 또 한번 미뤄졌다. 공정이 92%인 상태에서 주 시공사인 남양건설이 지난달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현장이 멈춰선 것이다. 다른 공동 도급사 3곳은 추가 공사비 280억 원이 필요하고 피해를 모두 떠안기 어렵다며 구제책을 요구하고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신세다. 이 단지 예비 입주자 정모 씨(43)는 이삿짐을 창고에 맡긴 채 원룸에서 단기 임대로 버티고 있다. 정 씨는 “입주 예정 시기에 맞춰 살던 집을 팔면서 살 곳이 없어졌다. 23㎡(약 7평)짜리 원룸에 입주해 아들을 30분 거리 유치원으로 매일 데려다주고 있다”며 “입주 예정자였던 동생 부부도 원룸에 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남개발공사 측은 “공사 재개를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아직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미분양으로 주변 상권은 ‘유령 상권’이 됐다. 239채 규모의 대구 서구 내당동 ‘반고개역푸르지오’ 단지는 올해 1월 준공했지만 계약 물량은 10여 채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단지 상가 13곳 중 11곳이 공실이다. 인근에서 50년 넘게 의류 등을 판매하고 있는 상인 70대 서모 씨는 “재개발 전에 주택이 그나마 70채 정도 있었는데 그때 단골들은 다 떠나고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부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는 “3개월 전 분양 대행 업체들이 상가를 채웠다가 다 철수했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똘똘한 한 채’를 갖겠다는 기조가 형성되며 지방에서는 아파트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인 상황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2129채로 2년 전 대비 163.5% 늘었다. 지방 비중이 5만7368채로 80%에 달한다.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3230채로 10개월째 증가세다. 아파트를 짓더라도 팔리지 않아 투입한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도 내기 어려운 것이다. 대구 지역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 정부에서의 집값 급등기를 겪으며 이 지역에서 돈 있는 사람들도 투자 대상으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바라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집값도 서울과 지방이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대비 이달 15일 서울 아파트값은 1.21% 올랐지만 지방은 1.16% 하락했다. 서울은 17주 연속 집값이 상승한 반면 지방은 8주 연속 하락세다. 지방에서는 할인 분양, 페이백 등 미분양 밀어내기에 안간힘이지만 지역 공동화가 우려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아닌 법인, 기관 등 다양한 투자자가 지방 미분양 주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중한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서울에서의 투자 심리를 지방에 끌어올 수 없다면 기대 수익률에 최적화된 기관투자가를 끌어들여 장기 임대 등으로 부동산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사 줄도산#전국 미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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