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의 부활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미국·프랑스·영국·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이미 원자력 발전 늘리기에 이미 나섰고요. 원전에 부정적이던 이탈리아·노르웨이·호주에서도 기류가 바뀌고 있죠. 기후 변화에 맞서려면 탄소 없는 원자력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기 때문인데요.
마침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 발전소 수주전에서 한국 기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자력 발전 산업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초창기엔 원자력 기술에 관심이 컸지만, 지금은 가동 중인 원전이 한 곳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탈리아는 1990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탈원전’ 국가가 됐고요. 연구용 원자로 2기를 운영해온 노르웨이는 2019년 이를 완전히 폐쇄됐죠.
그런데 원전의 종말을 선언했던 이들 나라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부활할 조짐입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소형 모듈형 원자로에 대한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고요. 지난달 노르웨이 정부는 원자력 발전 도입을 검토하는 공식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논란 끝에 원전을 폐쇄했던 국가들이 왜 유턴을 모색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원자력 없이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이탈리아는 태양광, 노르웨이는 풍력 발전을 확대해 왔는데요. 풍력이나 태양광만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량을 메우려니 한계에 부닥칩니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땅이 풍력 터빈 또는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게 된다는 게 문제이죠.
이탈리아의 환경·에너지 안보 장관인 질베르토 피케토 프라틴은 300MW를 발전하는 소형원전은 겨우 4헥타르(4만㎡)의 토지만 필요하다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탈리아는 언덕과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지형을 태양광 패널로 덮을 수 없습니다.”
노르웨이의 원자력 스타트업 노르스크 케르네크라프트의 대변인 수니바 로즈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270개 터빈을 가진 포센 풍력단지(유럽 최대의 육상 풍력 발전소)를 대체합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진 것도 원자력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13년 전 국민투표에서 90% 넘는 유권자가 원전 재도입에 반대했을 정도로 원자력을 혐오하는 나라인데요. 최근 설문조사에선 37% 응답자가 ‘원자력 기술이 더 안전하다면 이탈리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일수록 원자력에 긍정적이라고 하죠.
‘핵 청정국’ 호주마저 원전 지을까
원전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옅어진 건 유럽 국가만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진 호주에서도 최근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데요. 총선을 1년 앞두고 야당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죠. 지난달엔 원전을 어디에 지을지 7개 부지도 공개했습니다(폐쇄된 석탄 화력발전소 부지에 짓겠단 계획).
호주는 역사상 한 번도 원전을 지은 적이 없습니다. 시도는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죠. 세계 주요 우라늄 공급 국가 중 하나인데도 말이죠. 아예 1998년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한 모든 핵 시설 운영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을 정도인데요(G20 국가 중 유일).
그렇게 호주에선 원자력 에너지는 끝난 줄 알았건만. 호주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만 해도 호주인의 62%가 원전에 반대한다고 답했는데요. 올해 4월 여론조사에선 61% 응답자가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걸로 나타났죠. 호주 야당인 자유당 대표 피터 더튼은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재생에너지만 사용해 24시간 내내 전기를 공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경제가 24시간, 주 7일 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는 강력한 전력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호주는 더 깨끗한 전기와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전 짓는데 17년 걸린다?
일부(독일·오스트리아) 국가를 제외하면 유럽에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원전의 단계적 폐쇄 계획을 세웠던 벨기에나 스페인은 가동 기간을 연장했고요. 동유럽 국가(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에스토니아 등)가 공개한 원전 건설 계획은 최소 12기, 건설비용으로는 총 1300억 유로에 달하죠.
동시에 원전에 대한 회의론도 점점 커집니다. 안전과 환경 때문이냐고요? 그건 물론 중요한 이슈이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과 돈.
프랑스 EDF(프랑스전력공사) 컨소시엄은 영국에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을 짓고 있는데요. 당초 2025년이라던 완공 시점이 계속 미뤄져 이제 이르면 2029년(늦으면 2031년) 예정입니다. 그만큼 공사비용도 180억 파운드에서 340억 파운드로 불어났죠.
공사 지연과 이로 인한 비용 초과는 선진국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서 이제 흔하다 못해 표준이 될 판인데요. 지난해 가동이 시작된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은 공사 기간이 무려 17년에 달했고요(EDF가 건설, 13년 지연). 역시 EDF가 건설 중인 프랑스 플라망빌 3호기 역시 17년의 긴 공사를 거의 마치고 드디어 시운전에 들어갔습니다(계획보다 12년 지연). 미국도 상황은 비슷한데요. 미국의 최신 원전인 조지아파워 보글(Vogtle) 3호기, 4호기는 공사가 7년 지연되면서 원래 예상했던 건설비(140억 달러)보다 170억 달러가 더 들었습니다.
원전 반대론자들은 바로 이 점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흔히 원자력 발전 장점이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보다 저렴한 생산단가에 있다고 하는데요. 천문학적 공사비용을 따지면 그 반대일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지금 원전 건설을 시작해도 15~20년 뒤에나 원전이 돌아간다면 그전까진 무엇으로 전기를 공급하느냐도 문제입니다. 선진국에서 원전 건설은 너무 느리고 비쌉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원자력 발전의 너무 높은 건설비용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현재 미국·프랑스·영국에서 건설 중인 대형 원자력 발전소는 발전비용이 MWh당 약 150~200파운드(약 27~36만원)이 될 거라고 하죠. 이 지역 태양광·풍력 발전(MWh당 50~60파운드)의 몇 배인데요. 이걸 MWh당 100파운드(약 18만원) 이하로 낮춰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브렌트 와너 IEA 전력 부문 책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원자력 산업이 더 큰 시장에서 진정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를 제시간에, 예산 내에, 낮은 비용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유럽은 용접공 쟁탈전 중
각국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속속 내놓은 지금. 그래서 중요한 건 납기와 예산에 맞춰서 원자력 발전소를 빨리 지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한국 기업으로 구성된 ‘팀코리아’가 체코 원전 수주를 따낸 것도 이런 적기 시공 능력 덕분이란 분석이 나오죠.
그런데 걱정스러운 게 있습니다. 바로 인력인데요. 지금 유럽은 원전 건설 인력난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미 프랑스·영국·스웨덴에서만 수십만명의 용접공과 엔지니어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요.
2035년까지 원전 6기를 추가 건설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프랑스의 경우, EDF가 앞으로 10년 동안 10만명의 원전 건설 인력을 추가로 모집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은퇴한 직원까지 다시 고용할 정도로 인력 구하기에 안간힘인데요. 자연히 임금 수준도 올라가겠죠. 프랑스 엔지니어링 회사 아이스템의 토마스 브랜치 부사장은 블룸버그에 “다른 부문보다 더 큰 임금 인상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은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4배로 늘린다는 목표이죠. 이를 위해 10년 동안 필요한 인력은 12만3000명. 영국 정부와 업계는 견습생을 구하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이른바 ‘데스티네이션 뉴클리어(destination nuclear)’라는 캠페인인데요. ‘경력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영국의 게임체인저인 원자력 분야에서 미래를 불태워라’라며 구직자들에 다가가고 있죠. 이미 2~4월엔 런던 지하철역에 광고했고요. 올가을엔 소셜미디어와 TV 광고를 통해 젊은 층에 어필하겠단 계획입니다.
2045년까지 최소 10개 이상의 원자로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스웨덴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수만 명 근로자가 필요하다는데요. 이 때문에 스웨덴 대학에선 요즘 다른 학과 전공생에게 원자력 분야를 소개하는 무료 점심 행사가 열릴 정도입니다. 웁살라대학의 핵물리학 교수 아네 하칸손은 “병목 현상”이라고 설명하죠. “어떤 사람들은 ‘해외에서 노동자를 수입하자’고 말하지만 프랑스, 영국 같은 다른 나라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기업은 빨리, 잘 만드는 생산 관리 능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일손이 부족하고, 임금이 치솟는다면 발전소를 제때 짓는 일이 쉽진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 동유럽 국가에선 프랑스의 신규 원전 건설 현장으로 유럽 내 인력이 다 쏠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상황인데요. 최근 유럽 상황을 볼 때 원전 산업 앞에 밝은 미래가 빛나고 있는 건 맞지만, 거기 도달하기까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By.딥다이브
지난해 5월 딥다이브가 ‘원전 르네상스‘를 다루면서 한국에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요. 일단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미국과 유럽에서 원전 신규 건설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전 종말을 선언했던 이탈리아와 노르웨이도 재도입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원전을 법으로 금지한 호주에서도 야당이 원전 건설을 공약으로 내놨습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만으로는 탄소중립으로 갈 수 없다는 게 원전이 부활하는 이유입니다.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건 원전의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선 종종 원전 건설이 너무 느리고 비쌉니다. 공사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면서 엄청나게 돈을 까먹는 경우가 너무 많죠. 게다가 유럽의 고질적인 인력난은 점점 심해지는데요. 납기를 딱딱 맞추기로 유명한 한국 기업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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