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빵지순례’… 관광명소된 빵집, 지역경제에 활력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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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빵에 빠진 MZ세대
식습관 바뀌고 ‘취향 소비’ 영향… MZ세대 중심 놀이문화로 정착
유명 빵집은 평일 ‘오픈런’ 기본… 택배 주문 1분 만에 마감되기도
지역 관광-경제 마중물 기대… 지자체, 빵 지도로 관광객 유치
“빵집 중심 ‘로코노미’ 기회”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빵집 ‘후와후와’에서 손님들이 빵을 고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6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 빵집 ‘후와후와’. 평일임에도 매장 앞으로 빵을 사러 온 손님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 시각 입장을 위해 대기 중인 손님은 42팀이었다. 예상 대기 시간은 2시간 19분. 정오에 오픈해 겨우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유리문 안쪽으로 보이는 매대 곳곳이 비어 있었다. 약 33m²(약 10평) 크기의 작은 동네 빵집인 이곳은 이른바 ‘빵지순례(빵+성지순례)’를 즐기는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샌드베이글’, ‘쫀득빵’ 등 대표 상품을 맛보러 순례자들이 찾아온다.

대학생 보현 씨(24·경기 시흥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진을 봤는데 빵이 맛있어 보여서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왔다”며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빵집 투어를 다니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이모 양(17·경기 고양시)은 “이 가게의 빵을 좋아해서 여러 번 방문했다”며 “지금은 대기 순번표를 받아놓고 주변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지만 대기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가게 앞에서 2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빵을 사 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유명 빵집 ‘오픈런’… ‘빵케팅’ 신조어도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맛있는 빵만 먹을 수 있다면 먼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빵지순례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한 빵집을 찾아 그곳에서만 파는 제품을 사 먹는 것이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각종 SNS 채널을 통해 유명한 빵집 정보를 나눈다. 전국의 유명 빵집만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어는 수만 명에 이르기도 한다.

일반 여행객들이 지역의 관광 명소, 향토 음식 등을 따져 여행지를 고른다면 빵지순례자들은 그 지역의 유명 빵집을 기준으로 여행지를 고른다. 약 10년 전부터 유명한 빵집을 투어해 왔다는 최모 씨(30)는 “빵지순례의 매력은 새로운 장소를 그 동네에서만 파는 빵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가장 최근에는 강원 양양군에 있는 빵집을 다녀왔고, 제주도까지 빵지순례를 다녀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직접 매장을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유명 빵집 제품을 택배로 주문하기도 한다. 일부 인기 있는 제품들은 판매 수량에 비해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몰려 판매를 개시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품절되기도 한다. ‘빵케팅(빵+티케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실제 빵지순례자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 ‘빵소담’에는 “매주 빵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빵케팅에 실패해 휴가를 내고 매장에 직접 방문했다” 등의 후기가 잇따랐다. 빵케팅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시 글도 다수다.

● 빵집이 지역 관광·경제 마중물 효과

이처럼 빵지순례가 대세로 떠오른 것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취향 소비’를 즐기는 MZ세대의 특징이 맞물린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한국유통학회장을 지낸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은 “빵, 커피 등 서구의 식문화가 익숙해지면서 베이커리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며 “특히 빵집과 베이커리 카페 등이 소위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사진 찍어 올리기 좋은)’한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주도하면서 빵지순례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했다.

빵지순례의 특징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닌 지역 기반의 동네 빵집이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유명한 빵집은 일종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대전의 지역 빵집 ‘성심당’이 대표적 사례다. 1956년 대전역 찐빵집으로 시작해 68년간 대전에서만 매장을 운영하는 성심당은 빵지순례자들의 필수 코스다. 대표 메뉴인 ‘튀김소보로’는 출시 이후 2021년까지 8000만 개 넘게 팔렸다. 최근에는 ‘딸기시루’와 ‘망고시루’ 등 케이크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오픈런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인기에 힘입어 성심당의 운영사 로쏘는 지난해 매출 1243억 원을 기록했다. 동네 빵집 매출이 1000억 원을 넘은 것은 이례적이다. 영업이익은 315억 원으로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199억 원),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214억 원) 등 대기업을 앞질렀다. 군산의 ‘이성당’, 부산 ‘옵스(OPS)’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으로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됐다.




● 지자체들의 “특명! 빵지순례자 모시기”

동네 빵집이 핫한 관광 상품으로 떠오르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도 빵지순례자들을 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빵지순례 지도’다. 대전 동구는 지난달 대전 원도심 현지 빵집 지도를 발행했다. 대전 동구 관계자는 “현장에서 보면 관광객들이 양손에 빵 봉투를 가득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빵지순례를 위해 대전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잘 알려진 빵집 외에도 동네에 숨어 있는 빵집들을 알리기 위해 빵지순례 지도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도가 관광객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으면서 대전 동구는 지도의 일러스트를 활용한 티셔츠, 자석 등 각종 굿즈(기념품)를 출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대구시도 지역의 빵집을 역사와 함께 소개한 책자인 ‘빵은 대구’를 발간했다. ‘대구를 대표하는 빵’ ‘대구가 기억하는 빵집’ ‘대구를 바꾸는 빵집’ 등 챕터별로 나눠서 대구의 유명 빵집들을 소개했다.

빵지순례 지도를 통해 지역 특산물을 소비하고 알리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전남도는 2022년에 이어 올해도 빵지순례 지도를 발행할 계획이다. 지역 특산물을 사용해 빵을 만들거나 혹은 그 모양을 본떠서 빵을 만드는 지역 특허 빵집들을 주로 소개하기 위해서다. 여름 휴가철인 8월 초 SNS를 통해 빵지순례자들에게 지역 장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 등을 배포하는 이벤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쌀 주요 생산지인 경기도는 쌀 소비 확대를 위해 경기 쌀빵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빵지순례 열풍을 “빵집을 중심으로 ‘로코노미(Loconomy)’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로코노미는 ‘지역(Local)’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 거대 상권에서 벗어나 지방의 작은 상권을 중심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가 그 지역에서만 알려진, 숨어 있는 장인 빵집들을 발굴해 적극 홍보한다면 지역 관광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빵지순례#관광명소#빵집#지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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